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인터뷰…"공론의 장에서 다시 논의해야"
"단순히 의사의 정원을 늘리는 '의대 정원 확대'나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안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발표 다음 날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한 바 있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의사 총파업을 찬성하지도 않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의 목숨을 볼모로 이런 식의 실력 행사를 하는 행위는 매우 부적절한 거죠."
공공의과대학 설립을 필두로 한 의사정원 확대정책에 반발해 전국적인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투데이는 2일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원진녹색병원에서 정형준(45)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을 만났다.
정부안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최근 강경 일변도의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인터뷰를 통해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는 정형준 위원장은 원진녹색병원의 재활의학과 의사이기도 하다. 그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도 바쁜 시간을 쪼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 등 공공의료를 위한 단체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의사 겸 보건의료운동가인 그에게 정부안의 문제점과 '의사 총파업'에 반대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의대 증원·공공의대 설립' 정부안, 오히려 인프라 구축이 우선돼야"
앞서 7월 23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 당정 협의회를 열고 2022학년도부터 400명씩 10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4000명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을 활용해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하고 공공의료 필수 분야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정형준 위원장은 정부의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방안에 대해 부정적이다. 공공의료를 위해선 공공의료기관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책이 우선 돼야 하는데, 단순히 의사를 양적으로 늘려놓는 것만으로는 '지역 불균형' 등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정 위원장은 "예를 들어 이번에 확대하는 의대 정원 400명 중에서 50명은 민간산업체 의사(화장품, 의료기, 제약회사 등)인데 산업체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의사 정원을 늘리는 나라가 전 세계에 어디 있냐"라며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공공을 위해 일하는 의사인데 공공의료기관이 아닌 사립대 병원에서 일하게 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의료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민간의료기관이 지방에 병원을 설립해 수익성이 있으면 왜 설립하지 않겠냐. 민간은 수익성이 있으면 가는 것이고 없으면 가지 않는다"라며 "수익성이 없는 지방에 의료기관이 있어야 한다면 신축 공공의료병원을 만들고 고난도의 수술이나 의료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공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에 병원을 지어도 지역 환자들이 어차피 수도권으로 가지 않겠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고난도 수술이나 이식 수술 같은 것을 전국적으로 모든 지방에서 다 하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런 수술들은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도 시설과 설비, 인프라 등이 갖춰진 곳이 따로 있다"면서 "골절환자 수술 등 기본적인 의료 수술을 맡는 것이 지방의 공공의료기관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반박했다.
정 위원장은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10년을 근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제'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오히려 그는 현재 의대생·인턴·전공의 등의 수련 기간을 의무 기간 10년에 포함한 현행 안이 아니라, 수련 기간을 빼고 전문의가 된 후 10년간 지방에 복무하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전문의가 되고 나서 지방에서 10년 동안 일하게 하는 게 훨씬 더 지방을 위한 방안이고 취지에도 맞는 것"이라며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지방에서 적자가 나는 곳은 결국 공공의료기관에서 해야 한다. 지역의사제도 민간의료기관이 아닌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안 중 '공공의대 설립' 방안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발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의대는 '일반 의과대학'이 아닌 '의학전문대학원'인데, 의학전문대학원은 사실상 실패한 의료 정책일 뿐 아니라 의사를 오히려 더 늦게 배출하기 때문. 정 위원장은 "왜 4년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대학원 4년을 더해서 더 늦게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냐"라며 "정부가 6년제 일반 의과대학을 만들면 되는데 4년제 대학원 설립은 비용이 덜 드니까 하겠다고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최근 불거진 공공의대의 '시민단체' 추천위원회 관련 논란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되는 부분이라면서도 의학전문대학원의 문제를 재차 언급했다. 그는 "과거에 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했을 때 제일 논란이 된 게 '아빠찬스', '엄마찬스' 등의 불공정 문제였다. 대학원은 수능 등 객관화돼있는 성적을 보고 선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공공의대를 일반 의과대학으로 설립하면 다른 의과대학과 같은 입시요강이 적용되므로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 총파업, 명분과 대안이 부재…노골적으로 정치화됐다"
정형준 위원장은 소위 '의사 총파업'이라 불리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명분'과 '대안'이 부재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행동은 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 진료 거부까지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며 "막상 집단행동을 진행하다 보니 의사 단체들이 생각하는 실질적인 대안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의료계 내부에서의 자체적인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즉, 의료계가 이 상황을 통제하거나 조율할 생각 없이 누가 더 강경한 행동과 태도를 보이는지만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계가 실력 행사를 해보니 정부가 잠정 합의안을 양보하고 전공의와 협상도 하게 되니까 점점 반정부·강성의 성격으로 변질이 된 것"이라며 "파업의 성격이 이제는 훨씬 노골적으로 정치화됐다"고 했다.
전공의,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데 대해선 "전공의는 노동 강도도 세고 노동 시간도 길고 힘든 일"이라면서도 "그 와중에 누군가가 전공의 등의 젊은 의사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선동했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2028년이 되면 OECD 평균 의사 수가 된다' 등 정책 자체를 반대하기 위해 나오는 가짜뉴스는 대한의사협회에서 (젊은 의사들을) 선동하기 위해 만드는 논리"라며 "전공의들이 환자 진료를 거부하면서까지 우리 의견을 관철해야겠다고 자생적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라고 봤다.
최근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들'과 같이 일부 젊은 의사들이 익명으로 총파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선 "익명으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이 집단이 폐쇄적인지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며 "자신이 다른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를 못 할 정도의 분위기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는 공공재…다만 국가가 의료인 양성에 책임져야 성립"
최근 '의사는 그 어떤 직역(특정한 직업의 영역이나 범위)보다 공공재라고 생각한다'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발언에 대해 정 위원장은 "'의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공재라는 것은 말실수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정확히 얘기하면 '의료'는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가 국가의 기본적인 복지 서비스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의사를 공공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자산으로 생각하려면 국가가 의료계의 부족한 인프라를 위해 일종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무상 교육을 제공하는 유럽 국가들의 예를 들며 "국가의 지원을 통해 무상으로 교육을 받은 유럽의 의사들은 병원에서 일할 때 사회에 헌신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며 "유럽에서는 의료가 공공재고 거기서 일하는 의사들도 공공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의 의료 교육 시스템에 대해선 "교육과정부터 양성과정까지는 국가의 지원이 하나도 없는 대신에 전문의가 되고 나면 돈 많이 벌고 잘 살 수 있으니까 희생을 하라는 것 아니냐"라며 "의료가 공공재라고 하는 주장을 정치권에서 하게 되면 의사들 처지에서는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돈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는데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나 사회가 공공적인 목적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제대로 접근해야 한다"며 "정부는 의사가 공공재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제는 병원 안에서라도 국가 장학생을 많이 뽑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한국 의료계를 '전쟁'에 비유하며 국가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의료기관의 95% 이상이 민간에 맡겨져 있는 구조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공공의료기관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의 전쟁에서 '의사'라는 군인을 돈 주고 사서 쓰는 용병이나 민병대로 고용해왔어요. 이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없고 공익적인 사고를 하지 않아요. 이제는 국가가 비용을 들여 '의사' 정규군을 키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