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녀와 야수’를 잠시 들여다보자. 프로방스 어느 작은 마을에는 벨이라는 여성이 산다.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던 벨은 아버지 대신 야수가 지키는 성에 갇힌다. 야수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마음의 문을 연다. 하지만 벨을 사모하던 개스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야수를 죽이러 떠난다. 야수를 본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빠진다. 벨이 “야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해도 믿는 사람은 없다.
야수를 보면서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심은 ‘재귀성 이론(Theory of Reflexivity)’을 떠올리게 한다. 이 이론은 헤지펀드 업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투자원칙으로 삼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이론. 그는 “자산 가격은 주류 경제학에서처럼 균형 상태로 자연스럽게 수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재귀성 이론’이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 주식시장이다. 예로 들자면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주식 가치와 실제 정확한 주식 가치는 다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치를 믿고 행동에 나선다. 이 때문에 실제 가치와 달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가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기강화 때문에 시장이 현실과 괴리가 심해지면 스스로 자멸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던 미국 증시 상승에 제동이 걸렸다.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테슬라 등 주요 기술주들의 폭락이 중심에 자리한다. 개미의 힘에 움직이는 한국증시도 불안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소로스가 말한 ‘자기강화’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사람들은 완벽하게 합리적 인간이 아녀서 비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가격이 오르거나 떨어질 때 합리적인 지점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한 방향으로만 몰린다는 것.
자기강화 현상을 훼손한 방아쇠로는 부진한 경제지표가 있다.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달리던 이면에는 부진한 미국 경제지표가 있다. 경제지표 서프라이즈 인덱스는 250%대에서 190%대로 낮아졌다. 누적된 경제지표 부진에 8월 미국 ISM 비제조업 지수가 트리거 역할을 했다. 8월 PMI는 56.9로 전월(58.1)보다 부진했고, 컨센서스(57)도 하회했다.
예상한 부진이지만, 그 현실은 더 비참했다는 점이 그동안의 자기강화 현상을 깨뜨린 것이다. 결국, 불안심리와 차익매물 간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주가가 폭락했다.
이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시장은 펀더멘털에 대한 눈높이 조정과 함께 단기 과열, 밸류에이션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내는 과정이 전개될 전망”이라며 “8월과는 정반대의 자기강화 현상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자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변수가 펀더멘털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경제지표 눈높이 낮춰야 할 뿐 경기회복세, 모멘텀이 꺾이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