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 ‘베이비’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17살 소녀 프란시스는 가족과 함께 아빠 친구가 운영하는 산장에 3주간의 여름 휴가를 떠난다. 산장에서의 첫날밤, 우아한 댄스파티가 열리지만 17살 프란시스에게는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지루함에 산장을 서성이던 그때, 프란시스는 젊은 직원들이 몰래 즐기던 자유분방한 댄스파티를 우연히 발견한다. 젊은 남녀가 서로 몸을 맞대고 자유롭게 몸을 흔드는 이른바 ‘더티 댄싱’(Dirty Dancing) 파티. 프란시스는 그곳에서 댄스 교사 자니(패트릭 스웨이즈)와 페니(신시아 로즈)가 뿜어내는 자유로운 몸짓에 매료된다. 춤과 함께 청춘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영화 ‘더티 댄싱’(Dirty Dancing, 1987)이다.
극 초반, 주뼛 쭈뼛 춤을 추던 프란시스는 자니에게 춤을 배우며 어엿한 댄서로 성장한다. 늘어나는 춤 실력과 함께 부잣집 막내딸로 살아갈 때는 알 수 없었던 세상사와 사랑의 감정도 배운다. 지금도 회자되는 마지막 리프트 장면은 프란시스가 더는 어리숙한 ‘베이비’가 아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어른’이 됐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춤을 위해 프란시스를 무대로 이끌며 자니가 했던 말은 아직도 화제로 오르내리는 명대사 중 하나다.
(Nobody puts Baby in a corner)
프란시스에게 처음 거친 세상을 일깨워 준 건 댄스 강사인 ‘페니’였다. 페니는 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예일대생 로비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는다. 영화의 배경은 아직 보수적이었던 1963년 미국. 비겁한 남자인 로비는 책임지지 않고, 온전히 페니 혼자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 가난한 댄스 강사였던 페니에게 낙태 수술비 250달러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프란시스가 아버지에게 빌려 낙태 수술비를 내준다. 영화 더티 댄싱은 페니 이야기를 주요 서사로 함께 다루며 원치 않는 임신이 부르는 사회적 문제를 드러낸다.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사회적으로 갈등이 많았던 사안이었던 만큼, 관련된 추가 입법이 필요한데 국회는 조용하다. 입법 시한이 석 달 반 정도밖에 안 남았지만 21대 국회 들어 발의된 낙태죄 관련 법안은 0건이다.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수술 비용 문제와 임신 주수에 따른 태아의 생명권 문제 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임신한 여성의 낙태가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요소를 줄이는 것이 실질적이고 중요한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사법부가 포문을 열었으니, 이제 입법부가 나설 차례다.
원치 않는 임신과 안전하지 못한 낙태가 짓누르는 부담은 무겁다. 더 큰 문제는 늘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낙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계산조차 되지 않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3792명)의 19.9%(756명)가 인공임신중절 경험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만 15세에서 44세 이하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다.
임신 중절 여성 통계는 우리 사회가 더는 이 문제에 눈감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
10대의 경우 관련 통계는 더욱 부실하다. 질병관리본부의 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 조사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피임률은 59.3%에 불과하다. 하지만 청소년 임신중절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10대의 임신중절 수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지 의문이다.
영화 후반 프란시스는 수술 비용을 빌리고자 거짓말했던 사실을 사과하며 아버지에게 말한다.
“속여서 죄송해요. 하지만 아빠도 거짓말하셨어요. 누구나 다 똑같다고 하셨으면서 차별하셨어요.”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홀로 만들 수 없음에도 여성 혼자 짊어져야 할 무게는 너무 무겁다. 더는 우리 사회가 모른 척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