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만 15억2400만 달러(약 1조8127억 원)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실적(2억6500만 달러)의 6배가 넘는 규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월 미국 이뮤노메딕스를 시작으로 연속적인 수주 소식을 알렸다. 가장 최근 아스트라제네카와 3850억 원 규모의 계약까지 올해만 총 11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수주 규모의 급성장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올해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객사가 미국과 유럽의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다변화됐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아시아 소재 제약사가 다수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포트폴리오에 GSK, 룬드벡, 아스트라제네카 등 굵직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추가됐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지속하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이 의약품 생산 지역을 분산할 필요성을 절감한데 따른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의 활성화로 바이오의약품 생산 수요 역시 급증한 것도 한몫했다.
업계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선제적인 생산 설비 확충으로 CMO 호황 시기에 기회를 잡은 것으로 평가한다. 상반기 연속적인 수주로 송도 제1공장과 제2공장은 풀가동 중이지만, 제3공장의 가동률은 20%대로 생산 여력이 충분하다. 연내 추가 수주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4공장 조기 증설을 통해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CMO 리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제4공장은 바이오의약품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인 25만6000ℓ로 건설된다. 완공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총 62만ℓ의 생산 기지를 확보, 전 세계 CMO 시장의 약 30%를 점유한다.
김지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제4공장 완공 시 글로벌 CMO 1위 업체의 입지가 굳건해질 전망"이라며 "단일 생산기지에서 바이오의약품 개발 전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면서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기업으로는 동아쏘시오그룹의 원료의약품 계열사 에스티팜이 있다. 에스티팜은 아시아 1위, 세계 3위의 올리고 뉴클레오타이드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내년 말까지 반월공장에 800kg 증설을 진행해 세계 1~2위 수준으로 도약할 예정이다. 과감한 설비 투자를 단행해 글로벌 생산기지로 거듭나는 전략이다.
에스티팜은 16일 유럽에 있는 다국적 제약사와 458억 원 규모의 올리고 핵산 치료제 원료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 원료는 4분기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가 예상되는 노바티스의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인클리시란'의 상업용 생산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FDA 승인을 받은 올리고 핵산 치료제는 주로 희귀질환을 타깃, 환자 수가 적어 매출 증가에 한계를 보였다. 반면 인클리시란은 2024년 15억 달러(약 1조7500억 원) 이상의 연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추정되는 약물이다. 이에 따라 올리고 핵산 치료제로는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는 에스티팜이 연간 원료 100㎏ 안팎을 수출할 경우 최소 500억 원대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백신 전문기업 SK바이오사이언스는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백신 CMO 사업에 나섰다. 코로나19 백신 가운데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알려진 아스트라제네카의 'AZD1222' 원액을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이어 노바백스와 코로나19 백신 위탁개발·생산(CMDO) 계약을 체결하면서 CMO에 이어 CDMO 사업까지 본격화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 생산공장인 안동 'L하우스'는 최첨단 설비를 갖췄지만 그간 가동률이 낮았다. 그러나 이 점이 오히려 글로벌 백신 개발 기업들의 눈길을 끄는 요소가 됐다. L하우스는 연간 최대 1억5000만 도즈(1도즈=1회 투여분)을 생산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실패한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도 전 세계적으로 백신 생산에 대한 수요가 워낙 커 추가적인 수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