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문제로 배포가 중단된 독감 백신은 효능성과 안전성이 있을까 없을까? 한마디로 '물백신'이냐 아니냐를 놓고 제약업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독감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시간 등 세부내용을 아직 조사 중인 관계로 밝히지 않은 만큼 문제가 된 백신의 폐기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는 우선 유통과정에 대한 조사와 품질 시험을 거친 뒤 백신의 폐기 처분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2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독감 백신은 2~8도 사이 냉장 보관해야 하고, 유통 과정에도 온도를 유지해야만 백신 효과를 볼 수 있다. 식약처의 ‘백신 보관 및 수송관리 가이드라인’을 보면, 수송 중에는 냉각장치가 설치된 용기ㆍ장비나 냉각제 등을 사용해 허가받은 보관조건을 유지해 수송해야 하고, 수송하는 자는 수령하는 자와 긴밀한 연락을 취해 생물학적제제 등이 동결되거나 그 저장온도가 상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번 백신 운반을 맡은 신성약품은 백신을 냉장 차에서 다른 차로 옮기는 과정에서 콜드체인이 유지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현재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시간 등 세부내용에 대해 확인 중이다.
업계에서는 상온에 노출된 시간, 조건 등에 따라 폐기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백신 수송 시 콜드체인을 유지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의 문제다. 백신이 상온에 노출되면 효력이 없어져 ‘물백신’이 된다. 어떤 조건 하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따져봐야 할 문제지만, 노출 시간에 따라 물백신이 될 가능성이 있어 콜드체인으로 운송하도록 하고, 냉장 차에서 내려 도착지까지 이동할 때도 아이스박스를 통해 온도를 유지하도록 규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백신의 상온 노출 가능성에 대비해 제약업계에서는 이와 관련한 효능성 실험을 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된 이번 백신이 전량 폐기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백신은 2~8도를 유지해야 하는 게 맞지만, 백신을 냉장보관하다가도 잠시 이동할 때, 병원에서도 백신을 상온에 잠시 꺼낼 때 이런 모든 찰나의 순간 상온 노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실온에 백신이 노출돼도 효능이 계속 유지된다는 자체적인 테스트를 한 후에 유통한다”라며 “상온 노출 조건이 심각하지 않다면 전량 폐기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약 전량 폐기가 된다고 해도 추가 백신 생산은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에 공급하는 독감 백신은 3월부터 생산에 들어가고, 이후 다른 기업과 계약한 백신 생산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업체는 일정에 맞춰 생산설비를 가동하기 때문에 갑자기 국내 공급할 백신을 생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또 추가로 생산을 한다고 해도 생산까지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 문제로 이번 시즌 안에 독감백신을 추가 공급하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무료접종을 위해 백신업체들과 계약을 맺은 백신은 총 1929만(dose·1도즈는 1회 접종분) 도즈다. 이 가운데 문제가 적발된 백신 물량은 13~18세 어린이 대상 500만 도즈다.
정부는 신성약품의 과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문은희 식품의약품안전처 과장은 “의약품 도매업체는 약사법에 따라 허가된 온도를 유지, 보관해 운반할 책임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업무정지나 벌칙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과실 정도를 파악한 후 처분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약사법 47조에 따르면 유통에 대한 품질 관련 사항을 위반했을 때 1년 이하 징역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