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 둘러싼 시각차 커져
‘단 한 건만으로 인생 대박, 그러나 패소하면 쪽박.’
집단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소비자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기업은 배상 책임을 수행하다 결국 파산할 수 있다.
집단소송제를 둘러싼 사회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집단소송 제도’의 적용 대상을 증권 분야에서 모든 분야로 확대 적용하기로 하면서 기업들은 ‘좌불안석’의 상황에 부닥쳤다.
그도 그럴게 이미 전례가 있다. 1992년 국내 여성 1200여 명은 실리콘 보형물로 유방확대수술을 받아 피해를 봤다며 미국 다우코닝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다우코닝은 결국 패소하면서 42억5000만 달러(약 4조9900억 원)의 합의금을 물어낸 뒤 1995년 파산했다.
현대차와 기아차 역시 지난해 미국에서 세타2 GDi(직분사) 엔진 집단소송에 합의함에 따라 미국과 국내 차량 469만 대에 대해 평생 보증을 약속한 바 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28일부터 ‘집단소송법안’과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중 일부가 제기한 소송 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피해자가 함께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현재는 주가조작이나 허위공시 등에 적용되는 ‘증권관련집단소송법’만 있지만, 앞으로는 분야 제한 없이 피해자가 50명 이상인 경우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법무부는 현재 개별 법률에 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상법의 테두리에 넣어 적용 범위를 일반화하는 상법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지금 정책의 우선순위는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지,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을 가중하는 제도를 성급히 도입할 때가 결코 아니다”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 극복에 진력하는 기업들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경제계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기업들은 현재도 형사처벌, 행정제재, 민사소송 등에 시달리고 있는데 여기에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렵고, 무엇보다 소송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 중견 기업들의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기업들은 경영계의 입장을 철저히 배제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이 징벌 대상을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전에 기업에 미칠 타격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 또한 “집단소송제 등의 도입은 승소 판결에 따른 거액의 배상을 목적으로 한 기획소송 등의 남소 우려가 크고 소송을 주도하는 참여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도에 기업에 합의금을 종용할 유인도 있어 기업들이 상시 소송 리스크에 시달릴 수 있다”면서 “산업과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같은 산업계의 우려에도 기업의 잘못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에선 자리를 잡은 제도로,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작년 ‘공정거래 분야의 집단소송제 도입방안’ 보고서를 통해 “미국 연방법원에 2009년 이후 10년간 연평균 420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되는 등 집단적 피해구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법무부가 추진하는 집단소송 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나 디젤 차량 배출가스 조작, 사모펀드 부실 판매 등 기업이 영업 행위 과정에서 고의로 불법 행위를 저질러 중과실의 피해를 일으켰을 때 소비자의 피해 보상을 충분히 할 수 있을뿐더러 향후 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