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한 특성 버리고 독창성 강조…랜드로버 디펜더 등이 대표적
SUV의 시작은 2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견고한 차체와 잔 고장이 없는, 그리고 험난한 전장에서 뛰어난 험로 주파 능력을 바탕으로 내구성을 갖춘 다기능 ‘전술 지휘 차량’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미국 윌리스 사가 개발한 JEEP(지프)는 GM을 포함한 몇몇 자동차 회사가 공동으로 라이선스 생산에 나섰다.
그러나 숨 가쁘게 돌아가던 군수용 차량 생산공장은 전쟁이 끝나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수요가 사라지자 이들을 생산하던 차 회사들은 줄도산했다.
결국, 이들 군수용 자동차 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민수용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말이 민수용이지 군용으로 납품하던 차를 고스란히 일반인에게 되파는 방식이었다.
네 바퀴 굴림 SUV는 그렇게 시장을 키웠다. 그러나 전후 반세기 동안 이들 SUV는 특정 소비계층을 겨냥한 틈새(Nicheㆍ니치)시장에 머물러 있었다.
본격적인 SUV의 영토 확장은 세기말을 앞둔 1990년대 들어 시작했다. 픽업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미국을 시작으로 승용 감각을 갖춘 SUV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경쟁도 속도를 냈다.
소형 SUV 포문은 1991년 기아차가 먼저 열었다. 크고 투박한 지프형 SUV가 넘쳐나던 시절, 일본 도쿄모터쇼에 등장했던 1세대 스포티지 콘셉트는 큰 화제를 일으켰다. 둥글고 앙증맞은 SUV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기아차의 한발 앞선 상품전략에 화들짝 놀란 토요타와 혼다는 각각 라브4와 CR-V 등을 서둘러 개발했다. 결국, 콘셉트는 기아차가 한발 앞섰지만, 양산 차는 토요타와 혼다가 먼저 내놓으며 시장을 선점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완성차 업체가 속속 SUV 시장에 뛰어들었다.
독일 BMW가 X5로, 메르세데스-벤츠가 ML-클래스로 출사표를 던졌다. 영국 랜드로버가 장악했던 고급 SUV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주인공들이다.
이렇게 승용 감각을 가득 담은 SUV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SUV는 틈새시장을 벗어나 범용 자동차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이제는 세단과 해치백(또는 왜건)으로 점철된 승용차보다 SUV가 더 많이 팔리는 세상이 됐다.
이렇게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SUV들이 다시금 독창적인 특징을 앞세워 점진적으로 범용에서 전용으로 방향성을 옮기고 있다.
승용차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이전의 무색무취를 버리고 SUV와 픽업이라는 본연의 특징을 더욱 강조하고 나섰다.
포드는 단종했던 전설의 오프로더 '브롱코'를 최근 부활시켰다.
FCA 산하 지프는 현대적 의미를 더한 랭글러 속에 80여 년 전 서스펜션 구도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오프로드 성능을 강조한다.
영국의 자존심과 같은 랜드로버 역시 전설의 오프로더 '디펜더'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SUV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색무취의 범용 SUV들이 속속 다양한 방면에서 전용으로 지향점을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