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성수동 아뜰리에 아키에서 개인전 '스틸 인 더 포레스트'(Still in the Forest)를 연 권대훈 작가를 만났다.
권 작가의 상상 또는 기억 속 무언가는 '오브제마지(Objet+Image)'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규정됐다. 권 작가는 "오브제와 이미지 중간 정도의 무언가를 의미하는 게 오브제마지"라며 "기억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 같기도 하고 오브제 같기도 한 무언가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가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찰나'이다. 작가는 상황이 발생한 '현재'의 시간적 개념은 인체 조각 위에 상황 그대로의 명암을 설정하고 채색을 통해 깨달음의 찰나를 담아낸다.
권 작가는 강한 대비를 가진 명암의 채색을 통해 배경과 그 위에 놓인 인물의 공간감을 나타낸다. 나아가 빛의 방향을 통해 생기는 그림자로 시간의 흐름에 대해 표현한다. 여기서 그림자는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유 속의 현상이다.
"10년 전 기억 속 관념적 이미지를 연필 드로잉으로 남겼어요. 그리고 이를 조각으로 제작하며 실제 대상으로 재현한 거죠. 현재 기억 속에 이 인물들은 하나도 없어요. 오직 2008~2009년에 그린 이 드로잉만 남아있는 거죠. 드로잉 하나를 가지고 거꾸로 장면을 찾아가는 셈이에요."
전시의 제목이자, 메인 작품인 '스틸 인 더 포레스트'는 작가가 고찰한 대상과 이미지에 관한 연구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숲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을 통해 숲속의 대상들이 인물의 형상으로 보였던 미묘한 심리를 형상화했다. 약 1만 개의 작은 픽셀의 그림자로 보이는 사람의 형상과 숲의 이미지가 빛의 방향이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이미지로 변화한다.
권 작가는 "기억 속의 한 장면이 결코 평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그것이 대상으로도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억 속 장면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라며 "작품 속 인물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경험이 수반한 심리적, 감정적 요인을 변화하는 시간의 기다림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역시 '기다림'이라는 찰나의 시간 속에서 자아 탐색의 시간을 함께 갖길 바란다는 작가의 바람이 담겼다. 작품 속의 대상 없는 그림자에 주목해 '실재의 대상 및 공간'과 관념적 이미지로 만들어진 '가상의 대상 및 공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권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현대미술 조각 부문상인 '잭 골드힐 조각상(The Jack Goldhill Award)'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대 조소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