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독감 예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독감 유행까지 겹치는 '트윈데믹' 우려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아직은 소수지만 코로나19와 독감에 동시 감염된 사례가 확인됐다.
방역당국은 트윈데믹에 대비하겠다고 독감 백신의 무료 예방접종 대상을 전 국민의 3분의 1 이상으로 대폭 늘렸다. 그러나 콜드체인(냉장유통)이 유지돼야 하는 유통 과정에서 사상 초유의 상온 노출 사고가 발생해 국가예방접종사업 자체에 제동이 걸렸다.
과거에 이런 사례가 없다 보니 당국은 대응 과정에서도 허둥지둥한다. 사실 뾰족한 대책은 없다. 현재로서는 상온 노출 의심 백신의 샘플링 검사에서 안전성과 효능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만이 최선이다.
이제 와서 문제가 된 500만 도즈를 폐기할 경우 제때에 추가 백신 공급은 불가능하다. 재생산하기도 어렵지만, 가능하다 한들 3개월 이상 걸린다. '백신 대란'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유료 접종분을 무료로 전환한다면 유료 접종 대상자는 돈 내고 백신을 맞을 권리마저 빼앗긴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6일로 예정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질검사 결과에 따라 폐기 물량과 접종 재개 여부가 결정된다. 한밤중에 사고를 알렸던 당국은 상온에 노출돼도 무사할 수 있다는 제조사의 실험 결과나, 1회분씩 밀봉돼 오염 가능성이 적다는 점 등 백신에 이상이 없을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 유통에 대한 국민 불신을 걷어내기에는 이미 때늦어 보인다.
정부가 K방역의 성공에 취해 기본을 놓친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앞으로 코로나19 백신도 접종해야 하는 만큼 이번 사태가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백신 생산 및 유통체계를 시급하게 점검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