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 성장 추구하는 '인간 중심 경영'…수평적 기업문화 정착 가속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취임사로 본 회사의 미래는 'HㆍYㆍUㆍNㆍDㆍAㆍI'로 요약할 수 있다. △Humanism(인간 중심 경영) △Young(젊은 조직과 도전) △Ubiquitous(현실과 가상세계의 연결) △Network(국내외 업체와의 협력) △Diversity(미래교통수단의 다양화) △Agile(민첩한 조직ㆍ변화 능동대응) △Investment(과감한 투자)다.
◇Humanism=정의선 회장은 취임사에서 ‘인류’라는 단어를 7번이나 사용하며 인간 중심 경영을 펼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고, 결실을 모든 고객과 나누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라며 “모든 기업 활동이 인류의 삶과 안전, 행복에 기여하고 다시 그룹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류의 행복과 그룹 발전이 별개의 목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결국, 양적 성장에 집중하던 과거와 달리, 사람을 함께 생각하는 질적 성장을 추구해 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어 정 회장은 주주와 협력업체, 사회를 위한 책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추진하던 주주 친화 정책,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을 이어가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2015년에 16.8% 수준이던 배당성향을 지난해 35.4%까지 끌어올렸고,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단행하며 주주 가치 향상에 노력해 왔다. 인재 채용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돕기 위해 협력사에 1조 원대 긴급 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다.
◇Young=“임직원 모두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개척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뜻을 모은다면 위기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놀라운 성과를 만든 저력이 있다고 강조하며 임직원을 다독였다.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에 대응하는 과정이 힘들 수 있지만, 창의성을 갖고 힘을 모으면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직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근무 환경과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뜻도 재차 밝혔다. 이미 현대차그룹은 신입사원 공채를 수시 채용으로 전환했고, 수시 인사와 복장 자율화, 유연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체질 개선을 거듭했다. 정 회장의 의지가 강한 만큼, 수평적인 기업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 역시 계속될 전망이다.
정 회장이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린 ‘타운홀 미팅’ 등을 주기적으로 열며 ‘딱딱한 리더’ 이미지를 벗고 사내 소통에 힘쓸 가능성도 있다.
◇Ubiquitous=정 회장은 “상상 속의 미래 모습을 빠르게 현실화해 인류에게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겠다”라며 스마트시티를 예시로 들었다.
정 회장은 자문단을 운영할 정도로 스마트시티 구축에 관심을 두고 있어 관련 분야의 연구도 지속할 전망이다. 사람과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스마트시티’에서는 기술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이동 기회가 주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자율주행 기반 서비스를 통해 누구나 원하는 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고, 호출을 통해 서비스를 누릴 수도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부터 ‘인간 중심 스마트시티 자문단’을 운영해 미래도시가 어떻게 설계돼야 하는지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답을 찾을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에 자율주행 친환경 택시를 시범 운영할 목표를 밝혔는데, 스마트시티가 이를 선보일 무대가 될 예정이다.
◇Network=미래 차 전환을 앞두고 세계적 기업과의 협업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그간 현대차는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전략적 협업체제를 통해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앞당기려 했다. 정 회장이 미래 모습을 빠르게 현실화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만큼,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과 손을 잡는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현대차는 20억 달러(약 2조4000억 원)를 투자해 자율주행 기업 앱티브(APTIV)와 합작법인 ‘모셔널’을 설립했고, ‘오로라’와도 기술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카누’와는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을 바탕으로 하는 전기차를 개발 중이고, 영국의 전기 상용차 업체 ‘어라이벌’에 1억 유로(약 1346억 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도 목소리를 내며 폭넓은 협력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정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잇따라 만나 전기차ㆍ배터리 사업 협력을 도모하기도 했다.
◇Diversity=현대차그룹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기업’ 전환에도 속도가 붙을 예정이다.
정 회장은 “고객들이 자동차를 넘어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과 라스트마일 모빌리티(목적지까지 가는 마지막 수단), 로봇 등 다양한 운송수단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제조사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바뀔 것”이라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지난해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 핵심기술 개발과 사업추진을 전담하는 ‘UAM 사업부’를 신설했고, 2028년 이를 상용화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또한,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 등 개인형 이동수단을 활용한 공유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나아가, 차에 싣고 다니며 충전하고 사용할 수 있는 ‘빌트인(built-in)’ 타입 전동 스쿠터를 2021년께 신차 선택 사양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Agile=‘민첩한’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인 '애자일'은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조직을 뜻한다. 정 회장은 취임사에서 '고객'을 반복해 언급하며 달라진 고객의 눈높이를 충족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이 나서줄 것을 강조했다.
최근 들어 현대차는 품질 강화에 신경을 쏟고 있다. 현대차는 일부 신차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하자 신차 디자인을 공개한 뒤 약 한 달 동안 일반도로에서 수백 대의 차를 테스트해 시장에 판매하기로 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불성실한 근무 태도를 보인 직원을 해고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고객 행복의 첫걸음은 완벽한 품질을 통해 고객이 본연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것"이라며 "항상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Investment=정 신임 회장은 그룹 성장을 위해 투자 역시 대폭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글로벌 사업장에서 총 1조5653억 원을 시설과 설비투자에 투입했다. 지난해 상반기(1조1850억 원)보다 32% 증가한 수치다. 현대ㆍ기아차의 상반기 연구개발비 합산액은 처음으로 2조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설비뿐 아니라 연구개발 투자도 늘렸다. 현대차는 상반기에 지난해보다 15% 늘어난 1조3277억 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상반기 연구개발비 지출액은 2018년 1조460억 원, 2019년 1조1525억 원 등으로 3년 연속 늘었다.
정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현대차그룹은 그룹 총 투자를 연간 20조 원 규모로 크게 확대하고, 향후 5년간 총 100조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에는 미래 차 분야에 2025년까지 41조 원을 투자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