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폐기돼 사라졌어야 할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이 버젓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상품권 폐기업무를 맡은 16곳 중의 시중은행 중 단 1곳만 '폐기내역'을 관리대장에 기록하는 등 부실한 관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해당 업무를 소관하는 중기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역시 안일한 대처로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19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중기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폐기된 온누리상품권이 불법유통돼 소진공이 관련 사고 및 관리기관을 수사당국에 고발조치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며 "폐기 온누리상품권에 대한 관리ㆍ감독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진공과 강 의원 등에 따르면 소진공은 기존에는 민간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온누리상품권 폐기업무를 해왔다. 하지만 폐기된 상품권이 불법유통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사안이 심각해지자 민간 용역업체와 계약을 중단하고 현재는 금융기관으로 상품권 폐기업무를 일원화한 상태다.
폐기된 상품권이 다시 유통된 사례는 2018년 한해에만 114장이고, 현재까지 179장에 달한다.
소진공은 폐기 상품권 불법 유통 책임을 물어 민간 용역업체를 경찰에 고발했지만 결과는 '증거불충분 불기소' 처분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온누리상품권 불법유통 문제를 제대로 막기 위해 은행권과 '폐기 온누리상품권 관리사업' 계약을 맺었지만 믿었던 은행에서도 폐기 상품권이 유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 의원 측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A은행에서 폐기한 상품권 2건, B금융기관 폐기 상품권 1건, C은행 폐기 상품권 1건으로, 3곳의 금융기관에서 폐기한 상품권 총 4장이 다시 시중에 유통됐다.
소진공은 금융결제원과 협의를 통해 시중은행 16곳과 '폐기 상품권 일련변호 통합 전산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존에 민간 기관에 의뢰하던 폐기 상품권 일련번호 관리 사업을 전문 기관인 은행에 맡겨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였다.
◇폐기 온누리상품권, 어떻게 금융기관까지 뚫렸나
민간업체가 아닌 은행과 협약을 맺어 폐기한 상품권마저 불법유통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을 금융권과 중기부, 정치권 모두 사태를 예의주시 하고 있다. 현재까지 유력한 불법 유통 원인으로는 은행이 '폐기정보'를 일일이 기록한 뒤 따로 저장하지 않는 것이 꼽힌다.
실제 소진공과 상품권 폐기용역 계약을 맺은 16곳의 금융기관 중 단 1곳 만 통합관리시스템에 폐기 내역을 입력하고 있다. 강 의원에 따르면 신한, 우리, 국민, 기업, 농협, 하나, 대구, 부산, 광주, 전북, 경남, 수협중앙, 수협은행, 우체국, 새마을, 신협 등이 제휴를 맺은 금융기관으로, 이 중 우리은행 1곳만 통합관리시스템에 폐기내역을 등록했다.
금융권이 사용하는 페기 상품권 통합관리는 '자기앞수표 관리시스템'과 동일한 기술이 적용된다. 소진공은 은행과 계약을 맺을 때 '폐기 상품권에 ‘PAID’ 처리를 하고, 이미지를 스캔한 뒤 상품권 회수, 보관 등 폐기과정 일체에 있어 분실, 도난 등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가벼운 수준의 약식 계약을 체결한다.
문제는 중요한 작업인 '폐기정보'를 실제 서버에 관리하는 폐기정보 등록업무는 계약사항에 없다는 점이다.
소진공이 금융기관에 간략한 지침 정도만 제공한 채 폐기내역 등록과 CCTV 설치 등 좀더 촘촘한 내용은 생략하다보니 실제 금융기관별 폐기 지침은 제각각이고, CCTV 설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폐기된 온누리상품권이 재유통될 경우 해당 사고가 일어난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은행의 경우 1~2회 사건이 발생하면 서면경고 수준이고, 사고가 6번 반복될 경우 사업참여 제한을 두는 정도다. 애초에 제재 사항이 미미하다보니, 앞서 재유통 사고가 난 금융기관도 경고 조치에 그치고 있다.
강 의원은 "금융기관과 폐기절차에 대한 용역계약을 체결할 시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세울 필요가 있다"며 "폐기된 온누리상품권이 재유통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표준 예방지침을 세우고, 사고 발생 시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등 철저한 관리를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조봉환 소진공 이사장은 "폐기정보를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폐기절차를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계약 시스템을 고치겠다"며 "이미 폐기된 온누리상품권이 시중에 유통되는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