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터키 중앙은행은 이날 통화정책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인 1주일물 레포 금리를 연 10.25%로 동결했다. 리라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경기 부양을 우선시한 정권을 배려한 결정이다.
터키 중앙은행은 올해 들어 리라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자 지난달 24일 환율 방어를 위해 8.25%인 기준금리를 10.25%로 인상했다. 2018년 9월 이후 2년 만의 인상이었다. 앞서 시장에서는 2% 정도의 금리 인상을 예상했었다.
중앙은행의 금리 동결 발표 후 리라화 가치는 달러당 한때 7.963리라로 2% 이상 떨어져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올해 들어 리라화 가치는 달러당 약 25% 하락했다. 지속적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율(11.75%)을 밑도는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국영 은행을 통해 리라를 매입해 환율 방어를 해온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금 제외)는 2019년 말 대비 절반으로 줄어 거의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신흥시장 전략가인 피닉스 칼렌은 “기준금리가 인상됐다면,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악화를 해소하고 전통적인 통화정책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신뢰를 투자자들에게 보냈을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신호를 보지 못했다. 대신 중앙은행은 ‘스텔스 긴축’ 전략으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조심스럽게 긴축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터키 중앙은행은 오랫동안 고금리 저항감이 강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으로부터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받아왔다. 심지어 에르도안은 작년에 금리 인하에 반대해온 무라트 세틴카야 중앙은행 총재를 해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중앙은행은 2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시장을 놀라게 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제이슨 튜비 신흥시장 이코노미스트는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을 꺼리고 있다”며 “이는 신뢰도에 새로운 손상을 입히고 리라의 추가 하락 위험을 증대시킨다”고 지적했다.
현재 터키 리라를 둘러싼 불안 요소는 산적해 있다. 동부 지중해 가스전 개발권을 둘러싸고 그리스와 대립하고 있고, 유럽연합(EU) 내에서는 터키에 대한 제재론이 계속된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영토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 측에 가세한 것도 서방국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2019년 러시아에서 도입한 지대공 미사일 ‘S400’을 둘러싸고, 미국의 대 터키 제재를 막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지지율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터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