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책상에는 소에게 밥을 주는 딸의 사진이 있다. 사진이 찍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다. 축산을 전공한 아버지 덕분에 소와 가깝게 지냈다. 농장 문을 두드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구제역에 걸려 살처분되는 가축들의 이야기를 지나치기 어려웠다. 남 일 같지 않은 탓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스마트축산 스타트업 유라이크코리아 김희진 대표의 이야기다. 유라이크코리아는 2015년 9월 사물인터넷(IoT) 기반 실시간 가축질병관리 모니터링 서비스인 ‘라이브케어(LiveCare)’를 론칭했다. 사탕수수에서 원료를 추출한 바이오 캡슐을 경구 투여, 소의 체온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서비스다.
기존 가축 질병 관리에는 외부 열 감지 센서를 활용했다. 가축에 고리형 걸이를 달거나 귀에 칩을 다는 방식이다. 반면 유라이크코리아의 라이브케어는 소의 배 안에 직접 넣는 방식이다. 열 감지 센서 등을 통해 체내에서 직접 체온과 활동량, 반추 활동을 측정, 질병을 사전 예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가축의 발정 탐지도 가능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 1회 투여 시 소의 반추(1~2번째 위)에 평생 안착한다. 측정된 생체정보는 SKT 로라(LoRa) 망에 전송, 각 농장의 관리자가 PC 또는 모바일을 통해 관리할 수 있다.
가축에 직접 캡슐을 투입한다는 구상이 어떻게 나오게 됐을까.
김 대표는 “농장에서는 보통 소에게 캡슐만 한 크기의 마그네슘을 먹인다. 소 안에서 자연적으로 녹으면서 필요한 영양소를 보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마그네슘 덩어리를 한 번 섭취하면 1~6개월 동안 위 속에서 천천히 소화되며 영양분을 흡수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안정적으로 캡슐을 설계해 소 위에 안착시키면 도축 전까지 쭉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를 모르면 접근할 수 없는 구상”이라고 말했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데 3년이 걸렸다. 2012년 유라이크코리아 창업 이후 공식 서비스 론칭은 2015년 성사됐다.
김 대표는 “시드 투자를 받지 않았다. 투자를 받아 빨리 키우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내가 해서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한 과정을 김 대표는 전공을 살려 극복했다. 컴퓨터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만큼 시스템 통합(SI) 등 다른 일을 하면서 자금을 확보했다. 정부 지원 사업을 수주하며 확보한 자금을 유라이크코리아에 쏟았다.
사업 출범 당시만 해도 축산 ICT는 불모지였다. 동물 의료기기 인증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전무했다. 김 대표는 “기준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어렵고 힘들지만 재미가 더 컸다. 축산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어서 가능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탄생한 라이브케어 캡슐을 들고 농장 문을 두드렸다. 농장주의 마음을 여는 것도 순탄치는 않았다. 수십 년간 가축을 키워오며 완성한 노하우에 딴지를 거는 여성으로 비쳤기 때문일까. 김 대표는 “소 공부를 많이 하고, ‘얘는 컨디션이 좀 그래 보이네요’라면서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 대개 농장에는 화이트보드를 걸어놓고 발정 온 가축이나 백신 맞은 가축을 기록해 두시는데 이걸 살펴보면서 말을 붙이곤 했다”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기기 활용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50~60대도 스마트폰 활용도가 높아져서다. 다만 ‘내 노하우가 있는데 나보다 잘하겠어?’라는 자부심을 넘어야 했다.
김 대표는 “다음날 분만한다거나 발정기가 왔다고 하면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라이브케어가 맞고 본인이 틀렸다는 게 확인되고 나서 기분 나빠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요즘은 데이터 시대고 이게 과학이라고 설득한다. 농장주의 노하우와 결합하면 더 스마트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 마음을 여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렇게 살려낸 가축들이 많다. 농장주가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죽어가는 소를 탐지했다. 애플리케이션(앱) 알람을 통해 소의 상태를 전달하고, 정말 상태가 안 좋으면 전화로 직접 안내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물도 밥도 안 먹고 이상한 상태로 보였다. 심각해 보여 농장주에게 연락했고, 농장주가 이웃에 연락해 소를 살린 경우도 종종 있다”라고 설명했다.
밀착 관리를 하니 생산성도 자연스레 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분만사고 발생률이 약 12%에 달한다. 성우(다 자란 소)의 경우 3000만 원, 송아지의 경우 1000만 원의 가치가 매겨진다. 분만 사고 발생 시 분만우도, 송아지도 다쳐 상당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
김 대표는 “분만 관리를 도울 수 있다고 하면 선뜻 동의하시는 경우가 많다. 분만이 도래하면 온종일 가축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 만큼 농장주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이브케어의 분만 예측률이 거의 100% 가깝게 올라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시작의 계기가 됐던 구제역 문제에도 살뜰히 손을 보태고 있다. 작년 2월 구제역이 전국 확산 조짐을 보이던 당시 구제역 감시 관제센터를 24시간 운영했다. 백신을 맞은 전국 목장별 소들의 체온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농가를 직접 방문할 필요 없이 현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유라이크코리아는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방안도 마련했다. 라이브케어를 통해 5억 건 이상의 생체 데이터를 수집했다. 유라이크코리아는 지난 6월 가축 질병 및 법정전염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라이브케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개소했다.
김 대표는 “AIㆍ빅데이터ㆍIoT의 개념이 없던 15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수업을 들었다.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디테일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것과 그 방법을 알고 있다.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를 하려는 만큼 딥러닝 알고리즘 구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유의미한 기술은 해외에서도 알아보는 법. 국내 축산 시장은 350만 두로 전 세계의 0.3%에 불과하다. 브라질 시장은 1억 두가 넘어가는 만큼 해외 진출을 사업 구상 단계부터 준비했다. 유라이크코리아는 덴마크 정부를 비롯해 일본 축우 시장과 200만 달러 규모의 수출계약을 완료한 상태다. 2019년에는 한국 스타트업 중 유일하게 마이크로소프트의 국제 행사 ‘MS IoT in Action’에 초청되기도 했다.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유라이크코리아는 치밀하게 준비했다. 김 대표는 “국가별로 질병에 집중하는지, 발정 등 생산성에 집중하는지가 모두 다르다. 사육방식도 물론 다르다. 관심 있는 질병도 제각각”이라고 설명했다.
현지화를 위해 캡슐 안에 들어가는 센서를 각기 다르게 구현했다. 넓은 곳에 풀어놓고 가축을 기르는 국가의 경우 위성항법시스템(GPS)이 장착돼 가축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가축 숫자를 정확히 관리해야 하고, 사라지면 즉시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신환경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경우도 해당 국가의 데이터 통신에 맞게끔 캡슐을 손질했다.
김 대표는 “스스로를 IT 기업이고 기술 테크 기반의 바이오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농업 박사나 다른 회사와는 정체성이 다르다. 판로를 개척하고 아이디어를 맞춤형으로 사업화하는 데 힘을 쏟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 19가 변수가 됐다. 각 국가를 방문해 시장과 인증 시스템을 점검, 현지화를 해야 하는데 녹록지 않는다는 것.
김 대표는 “농장 컨디션도 점검하고 캡슐도 먹여보고 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잘 안 되고 있다. 화상으로 할 수 있는 건 진행 중이지만 직접 하는 것과 아무래도 체감이 다르다. 올해 안에 덴마크에서 론칭을 하려 했는데 전체적으로 미뤄졌다. 그래도 일본에서 총판을 진행하는 등 더디긴 하지만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유라이크코리아는 코로나 19로 국내에 머무르는 동안 내실을 다지는 중이다. R&D 인력 등 채용을 대폭 늘리며 사업 보강을 꾀하고 있다. 의사처럼 일주일에 한 번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며 케이스 스터디도 병행 중이다. 유라이크코리아의 상장을 위해 기술특례상장, 주관사 선정 등도 순조롭게 논의 중이다.
유라이크코리아의 5년 뒤는 어떤 모습일까.
김 대표는 “넷플릭스가 국가를 불문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나. 우리 라이브케어도 국경을 넘어 서비스하는 게 꿈이다. 그때쯤엔 우리 직원들도 소, 돼지 하나씩 전담 분사해 한몫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