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지난해 5월, 롯데그룹은 롯데카드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를 선정했다. 하지만 롯데카드 노조는 사내에 공고한 입문에서 “한앤컴퍼니는 금융사를 운영한 경험이 없으며 경영 능력을 증명한 바도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결국, 롯데그룹은 한앤컴퍼니 한상원 대표가 탈세 혐의 등으로 고발된 사실 등을 이유로 롯데카드 우선협상대상자를 우리은행·MBK파트너스 컨소시엄으로 전격으로 교체했다.
이처럼 최근 사모펀드가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시장 인식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사모펀드는 특정 소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경영권 인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한 후 자본 이득을 취하는 펀드를 말한다. 투자자는 주로 연기금이나 금융기관이다. 은행이나 증권회사가 일반투자자들을 상대로 판매하는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자 보호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모펀드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부정적 시각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기업을 인수한 다음, 비용을 절감한다는 목적으로 공장매각 등 구조조정을 한다거나 투자도 안 하면서 단기 실적을 올린 뒤 비싸게 팔아 치우는 일부 행태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에 ‘자본주의 탐욕의 화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사모펀드에 미운털이 박힌데는 지대 추구(rent seeking) 행위와 무관치 않다. 1조6000억 원대의 피해를 낳은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과 1100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옵티머스 사기 사건(피해 규모 5000억 원)이 이를 방증한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 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내부 정보를 빼돌리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청와대 행정관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금융감독원 출신인 김 전 행정관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 주범으로 알려진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금융감독원 내부 정보를 제공하고 뇌물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른바 ‘전주(錢主)’라 불리는 개인 자산가나 큰 손, 금융감독 당국의 관리부실이 만들어낸 암묵적 짬짜미 역시 ‘지대추구’ 행위라 할 수 있다.
옵티머스 펀드 사건은 운용사가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 작심하고 펀드를 설계했다는 혐의가 짙다. 초호화 자문단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곳곳에 등장하는 한양대 인맥의 활동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 의혹은 여전하다. 옵티머스 사내이사 윤모 변호사의 아내는 얼마 전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사건이 터진 뒤 사표를 냈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돈을 가진 세력이 정치인을 끌어들여 자신의 기득권에 유리한 제도를 유지하거나 만드는 금권정치의 한 형태다. 이는 국가 제도에 대한 신뢰를 하락시킨다”면서 “공정한 경쟁과 혁신 대신 금권을 이용한 지대추구에 더 많은 자원이 몰리도록 만든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옵티머스 금융사기 사건은 현 금융 소비자 보호 시스템의 총체적 난국을 방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며 “이번 사건의 발생에도 근본적 제도 개선과 철저한 금융감독이 다시 미뤄진다면, 유사 사건은 몇 번이고 재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사모펀드 관계자들은 “이는 사모펀드의 전체 모습도 아닐뿐더러 왜곡된 측면이 강하다”고 항변한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사모펀드가 활성화한 것은 그만한 순기능이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7월, 나재철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사모펀드 관련 브리핑에서 “사모펀드가 벤처·혁신 기업들에 대한 건전한 모험자본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고, 금융산업 내의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순기능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