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국 B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이어즈&이어즈’의 등장인물 스티븐은 회계사로 런던에서 딸, 아내와 함께 여유로운 삶을 살던 중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경제 위기 속에 재취업에 실패한 그는 자전거를 타고 택배를 배송하는 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다른 이에게는 현실 속 공포다. 항공업계 종사자라면 더 그렇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업황이 어려워진 데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등 시장 재편이 이뤄지고 있어서다.
한진그룹과 산업은행은 말만으로 그 불안감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
18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모든 직원을 품고 가족으로 맞이해서 함께할 기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19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약속을 믿어달라”며 “경영진으로부터 고용유지 약속을 받았다”고 발언했다. 20일에는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이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구성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양사의 중복 인력은 관리직을 포함해 800~1000여 명이다. 코로나 사태도 장기화하고 있다.
이미 이스타항공에서는 직원의 절반 이상이 직장을 잃었다. 지난달 600여 명을 정리해고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우리나라 항공운송업 상용근로자 수는 2만267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2751명)보다 1만 명 이상 감소했다.
휴직 중인 항공업 종사자들은 고용유지지원금만으로는 빠듯한 생계를 위해 ‘4대 보험을 받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자발적으로 전직을 준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양사 노조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을 두고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으라”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몇몇 발언만으로는 실업과 생계 위기에 대한 공포를 잠재울 수 없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한진그룹과 정부는 항공사 종사자가 안심할 방안,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