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중에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 개울물 길어다 돌솥에 물 끓여서 차 마시는 재미로 사네.” - 기묘년 해동절 수락산 밭에서 법정 스님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즐기던 취미가 있다. 바로 차(茶)다. 한국에서는 차를 대하는 예절이라는 뜻으로 주로 '다례'(茶禮)라 부르며, 일본에서는 '다도'(茶道), 중국과 대만에서는 '다예'(茶艺)라 한다. 모두 불교 선종의 영향을 받았지만 각 나라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듯 차 문화도 조금씩 다르다. 일본의 다도는 온도와 시간에 엄격한 편이며 차 마시는 과정을 중시한다. 중국은 다구(茶具)나 과정 보다는 차에 집중하며, 차 마시기 전 문향배(聞香杯)라는 그릇에 담아 차의 향을 즐긴다. 한국은 격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예절을 갖추고 손님을 편안히 대접하는 배려를 중요시 한다.
전통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차가 현대인의 취미 생활에 들어온 건 대중문화 덕분이었다. 특히 2017년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직접 중국 보이차를 다려 마시는 모습이 방영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코로나 블루를 달래고 마음을 다스리는 취미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벌써 7년째 차를 취미로 즐기고 있는 직장인 황예지 씨는 "차는 후각과 미각이 즐거운 취미"라고 설명했다. 황예지 씨가 요즘 즐기는 차는 대만의 우롱차 중 하나인 '동방미인'(東方美人)이다. 황예지 씨는 "동방미인 차는 호박 향이 나기도 하고 고구마 향이 나기도 하는데, 배부르고 든든한 구황작물 맛이 나서 요즘 같이 차디찬 날씨에 좋다"고 말했다.
황예지 씨는 본래 차 선생님이 여는 차 모임에 가거나 차를 좋아하는 지인들과 다과회를 열고 차를 즐겼다. 지난해에는 대만으로 차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진 요즘은 주로 집에서 차를 즐긴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다과회를 즐기기도 하고, 혼자 마실 때는 직접 만든 거북이 도자기를 다우 삼아 마시기도 한다. 최근에는 함께 차를 마시는 온라인 클래스를 듣기도 했다. 황예지 씨는 "명상과 차를 결합한 하동 녹차 티 클래스를 들었다. 차의 향과 맛을 따라가면서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차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다구와 차다. 보통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손잡이가 긴 다관(茶罐)이 포함된 한국식 다구와 배수관과 받침대로 물을 흘려보내는 중국식 다구다. 다구는 종류와 브랜드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1인 다기 세트에 3만 원대 제품부터 몇십만 원대에 달하는 제품까지 종류도 가격도 매우 다양하다. 다구를 모두 갖추면 차를 마시는 데 편리하고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비싼 다구를 마련하기보다 필요한 도구를 하나씩 사서 모으는 재미를 느끼길 추천한다. 차를 사랑하기로 유명했던 법정 스님은 평생 무소유 정신을 실천한 분이었다. 차를 우려주는 다관과 찻잔, 중국 차라면 차의 농도를 일정하게 맞춰주는 공도배(公道杯) 정도만 있어도 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차의 종류는 크게 여섯 가지로 색깔과 가공방법에 따라 △녹차 △흑차 △청차 △백차 △홍차 △황차로 나뉜다. 녹차는 잎에 높은 열을 가하거나 찌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보이차는 흑차, 우롱차는 청차에 속한다. 보이차는 중국 윈난성 고원지대에서 발효해 만든 차로 특유의 구수한 맛이 있다. 우롱차는 중국 남부와 대만에서 생산되는 차로 맑고 깨끗한 맛을 자랑한다.
홍차는 영국에서 즐겨 마시는 차종으로 찻잎을 완전히 발효시킨 후 건조한 차다. 인도산 다즐링과 아삼 품종이 가장 유명하다. 백차는 햇빛이나 열풍에 건조해 만든 차로, 색깔이 이름과 달리 노란색인데 이름의 '백'은 어린 찻잎에 난 흰 털을 뜻한다. 황차는 녹차 잎에 높은 열을 가하거나 찌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 과정을 민황이라 하는데, 이를 거치면 녹차의 쓰고 떫은 맛이 덜해진다.
절차에 따라 차 마시는 방법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유튜브나 온라인 클래스의 도움을 받길 추천한다. 소수 정예로 이뤄지는 티 클래스도 도움이 된다. 황예지 씨는 차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차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며 "다도가 아닌 그저 차를 즐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을 남겼다. "차를 처음 배울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맛이 없으면 잔에 내려놔도 된다는 것이었다. 취미라는 건 어디까지나 내 취향과 맞는 것을 즐기면 된다. 멋져 보이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내 취향과 반대되는 일을 하면 그 순간 취미가 아니라 고문이 된다. 차도 마찬가지다. 그저 즐긴다 생각하면 좋은 취미 생활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