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현 금융전문기자
작년 2월 25일 금융위원회가 ‘핀테크 및 금융플랫폼 활성화를 위한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 보도자료를 발표했을 당시 금융위 관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직접 들은 말이다.
최근 금융위가 마련하고 국회 정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계기로 금융위와 한국은행 간 갈등이 불거지는 양상이다. 갈등의 핵심은 지급결제청산과 관련한 허가 및 감독권한. 금융위는 핀테크(금융기술)와 빅테크(대형 정보통신기업) 육성과 금융권 전체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른 이용자 보호 및 서비스 인프라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반면, 한은은 한은 고유 업무를 침해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급(payment)·청산(clearing)·결제(settlement)라는 알 듯 모를 듯한 개념들이 나열되고, 핀테크·빅테크까지 언급되면서 일반인들은 무슨 상관이냐 할지 모르겠다. 또,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허나 이는 일반인들의 금융정보는 물론, 우리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주요 사안이다.
이 법은 지급·청산·결제 용어부터 혼동하고 있다. 그로 인해 초래할 혼란은 지면이라는 한계상 일단 논의를 차치하겠다.
우선 일반인으로서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문제 하나를 짚어본다. 자금 세탁 우려 등에 디지털 청산과 운영기관을 제도화하고 빅테크 외부청산을 의무화하겠다는 발상은 1984년 조지 오웰의 소설 ‘빅브라더(big brother)’를 연상키 충분하다. 청산이 필요치 않은 내부거래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으로 개인 간 금융거래 전부를 금융위가 속속들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뱅킹 제도화도 문제가 많다. 금융위가 유사 사례로 꼽는 영국과 싱가포르 등은 겸업주의를 택하고 있는 국가로 은행과 증권, 보험업 간 구분이 느슨하다. 반면, 매우 엄격한 분업주의를 채택한 우리 금융시스템과는 맞지 않다.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일이지, 일개 법 하나에서 쉽게 바꿀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은행 간 전산망이 개방되면서 안정성이 크게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 전산망을 해킹당해 8000만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잃었던 일이 우리나라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잖아도 한은에 대한 해킹 시도는 급증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한은 자료를 보면, 2016년 24건에 불과했던 한은에 대한 해킹 시도는 지난해 1413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도 8월까지 709건에 달한다. 이런 해킹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은 금융망이 뚫리지 않은 것은 폐쇄망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인 한은에 단 한 가지 목적만 남기라 한다면 물가안정도 금융안정도 아닌 최종 대부자 역할이다. 좀 어려운 개념일 수 있지만 이는 우리가 안심하고 돈을 송금하고, 밥을 먹은 후 신용카드를 내밀 수 있는 근간이다. 이런 거래의 마지막을, 또 행여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한은이 지고 있어서다.
금융위는 현 정부 들어 본격화하기 시작했던 금융감독체제 개편 논의와 맞물려 입지가 크게 축소됐었다. 핀테크를 빌미로, 사상 처음으로 금융결제원장을 꿰찬 것을 빌미로 조직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런 대목이다. 앞서 밝힌 금융위 관계자는 고위급도 아니다. 금융위에 뿌리 깊게 박힌 관치금융 인식을 날것으로 알기 충분한 대목이었다.
필자는 지난해 3월 25일 자 ‘이주열의 소탐대실이 아니기를’이라는 제목의 데스크칼럼을 통해 한은 본연의 임무인 지급결제업무를 금융위가 주도하려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6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59분간의 기자회견에서 무려 11분20초를 할애하며 전자금융거래법 중 지급결제청산업 조항에 대한 문제점들을 반박하고 나섰다. 이날 한은 노조도 성명서를 통해 ‘금융위는 지급결제업무를 넘보지 말라’고 주장했다. 한은이 뒤늦게라도 문제 제기를 한 것은 만시지탄이나 마땅한 일이다.
윤관석 의원은 이번 법안발의를 하면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스마트폰과 핀테크 혁신의 등장으로 급변한 디지털 금융의 현실을 제대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면 한국은행법을 정비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