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와 타협 실종, 증오와 분열로 이어져
미국 선거제도, 민의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해
앞으로 한 달여 지나면 트럼프 시대는 막을 내리지만, 그의 포퓰리즘에 열광했던 '트럼피즘'은 남는다. '트럼포크라시(Trump+Democracy)'가 사라진 자리에 병폐만 남는 셈이다. 미국의 상처는 회복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사이다 발언’과 ‘막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했다. 그가 2015년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며 내놓은 첫 번째 발언은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민주당이나 무역에서 기술 패권까지 전방위적으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 중국에는 악몽 같은 상대였다. 반면 거침없는 표현과 행동에 지지층은 열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는 현상을 가리켜 ‘트럼피즘’이란 말까지 생겼다.
민주주의는 양보와 타협을 바탕으로 작동하는데, 정체성 정치는 두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정체성은 쉽게 바뀌지 않거나 변하지 않는 속성이기 때문에 타협을 존재의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대선이 있는 해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벌어진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없다. 트럼피즘과 결합한 정체성 정치는 미국에서 증오와 분열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NYT는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의 선거제도도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평가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 대선은 민주주의 방식과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민주주의의 선거 4대 원칙은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인데 선거인단 제도는 간접 선거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일반 유권자들의 선거 결과에서 적은 표 차로 승리하더라도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독식하는 ‘승자독식제’이기 때문에 전체 득표수가 많아도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 패배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선거제도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200년 동안 선거인단 제도 폐지나 개혁을 다룬 법안이 700여 개나 의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로 당장은 민주주의 위기를 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내년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고 나면 오히려 문제가 더 도드라질 수 있다. 그동안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트럼프 대통령의 탓으로 돌렸으나 그가 사라지면서 어느 한 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나더라도 트럼피즘은 남아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서 위기가 더욱 커질 수 있다. NYT에 따르면 공화당원 5명 중 4명은 ‘바이든이 표를 훔쳐갔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선거 사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영향으로 지지자들은 ‘선거를 훔친다’거나 ‘IT 대기업이 선거에 간섭하고 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를 받아들였다.
반대로 바이든 지지자들은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선동가’라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지도 않고 걸린 척을 했다’는 등 음모론을 펼쳤다. 지지세력 간 대립이 더 격화하면 민주주의가 다시 자리를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