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에서 백신 개발 소식이 들려오는 시점에 공교롭게도 국내는 하루 확진자 수 1000명을 넘나드는 바이러스 확산 국면에 들어섰다. 코로나19 백신이 언제 개발되느냐란 질문이 언제 접종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여태껏 K방역 모범국가로 이름을 높였지만, 바이러스 종식 기대감을 높이는 백신 접종 사례가 하나둘씩 들려오면서 갑자기 무력해졌다. 이웃 나라에선 코로나19 백신 확보와 접종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오지만, 우리는 아직 내년 1분기 접종마저도 확신할 수 없다.
정부는 백신 확보가 늦어진 이유 중 하나로 ‘안전성’ 문제를 꼽았다. 무조건 빨리 접종할 게 아니라 안정성을 충분히 확보한 뒤 접종에 나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안전성’을 이유로 백신 선 구매 계약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면, 계약을 완료한 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뿐인 것은 의문이다. 정부는 4400만 명분 백신을 확보했다고 밝혔는데 계약을 완료한 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화이자나 모더나가 아니라 아직 임상 3상이 진행 중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세균 국무총리는 전날 “백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라며 백신 확보가 늦어졌다는 지적을 시인했다. 백신 TF는 7월 가동됐지만, 여름철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명 밑으로 떨어지면서 정부는 제대로 오판했다. 여러 전문가가 겨울철 바이러스 재유행을 경고했지만,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펜데믹 상황에서 K방역의 성공은 공동체 의식 덕이었다. 마스크 일상화에 동참했고, 거리두기 실천은 물론 의료진 덕분이라는 응원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준 모두의 헌신 덕에 K방역은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백신 확보 총력전 앞에서 K방역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의 오판에 대한 비난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지켜봐야 할 때다. 정부는 그간의 실수를 소상히 밝히고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백신 확보에 대한 무력감에 K방역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시 한번 공동체 의식을 되살려야 한다. 바이러스 종식은 아직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