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첫 손자를 본 김정애(61) 씨는 아들 내외의 성화에 못이겨 300만 원짜리 유모차를 선물했다. 유모차가 냉장고 한대 가격과 맞먹는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아들 내외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랐다. 방 하나를 아이 방으로 꾸미는 수리 비용에다 출산준비물을 구입하는데 웬만한 경차 한대 값을 쏟아부었다는 설명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신년 벽두부터 출산율 0.7명 대 시대가 시작될 정도로 아이 울음소리는 줄어들고 있지만 유아용품 시장은 오히려 커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자리잡으면서 출산을 선택한 부부들이 고가 유아용품 구매를 주저하지 않아서다. 아이에게 보다 좋은 제품, 또 육아에 편리하다면 과감히 지갑을 여는 것이 MZ세대 부모의 특징이다 보니 울음소리가 줄어도 유아용품 시장이 더 탄탄해진 이유다.
지난해 신생아수는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30만명 이하를 기록했다. 2000년 신생아수가 60만명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20년만에 반토막 아래로 급감한 셈이다.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생아수는 27만6000명으로 전년대비 10% 이상 줄었다. 매년 출산율 급감으로 세계 최저 출산국이 된 대한민국이지만 부모들이 신생아 1인당 지출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유아용품 시장 성장세는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유아용품 시장 규모는 4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2009년만 해도 1조 2000억 원대에 그쳤던 유아용품 시장은 2015년 6년만에 두배 성장한 2조4000억 원을 기록한데 이어 다시 5년 만에 1.7배 가량 커졌다.
아이를 위한 과감한 소비 덕에 고가의 프리미엄 유아용품은 품절사태를 빚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 기존 유아용품 관련 기업들의 신규 사업 진출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스토케의 프리미엄 유모차인 익스플로리는 국내 도입 초창기만 해도 ‘강남 유모차’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품의 가격은 200만 원 내외(악세서리 포함)다. 스토케 익스플로리와 맞먹는 부가부, 오르빗 등 200만~300만원대 유모차 브랜드들도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스토케와 오르빗의 경우 국내 기업이 인수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한국 엄마들이 선택한 브랜드라는 점이 국내 기업의 인수에 불을 당긴 것으로 분석된다.
예전엔 아이를 재우거나 달랠 때 업어주거나 토닥였다면 요즘에는 바운서가 필수용품이 됐고 영유아 침대는 수백만원을 호가해도 날개돋힌 듯 팔려나간다. 아이를 업을 때 쓰는 포대기 대신 2000년대부터 등장한 아기띠 가격도 20만~3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유아용품 업계에서는 출산율이 줄어들지만 유아용품 구매 객단가는 커지는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를 하나만 키우는 가정이 늘면서 하나뿐인 아이에게 좋은 제품을 구매해주려는 니즈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며 "여기에다 편리함을 중시하는 MZ세대 부모들은 비용이 크게 들더라도 육아가 편리해지는 편리미엄 유아용품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만큼 관련 시장은 출산율과 상관 없이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