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CEO 교체…반도체 슈퍼사이클 앞두고 주도권 경쟁
삼성 대규모 투자ㆍM&A에 업계 관심…이 부회장 사법 리스크는 불확실성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반도체 업계의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장비회사들은 연초부터 ‘빅딜’에 나서며 인수·합병(M&A)에 불을 지폈다. 업계는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M&A 시계가 멈춘 삼성전자가 올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통신용 칩 제조사 퀄컴은 애플 출신 엔지니어들이 만든 반도체 스타트업 누비아를 인수한다. 인수금액은 14억 달러(약 1조536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은 누비아의 뛰어난 CPU(중앙처리장치) 설계 능력이 5G(5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킹 시장의 핵심 요소인 반도체 성능과 전력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퀄컴은 이번 누비아 인수로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 의존도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퀄컴의 맞수인 미국 GPU(그래픽처리장치) 업체 엔비디아는 지난해 ARM을 400억 달러(약 44조 원)에 인수하기로 한 바 있다. 퀄컴은 누비아 인수로 단기적으로는 ARM의 라이선스 비용을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자체 설계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
세계 1위 미국 반도체 장비기업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도 일본 반도체 장비기업 고쿠사이 일렉트릭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인수 예상가는 35억 달러(약 3조8000억 원)다. 앞서 어플라이드는 지난해 고쿠사이를 인수하기 위해 약 2조6800억 원을 책정한 바 있다.
어플라이드가 당초보다 웃돈을 주고 인수가액을 올린 것은 중국에 반도체 장비 기술이 넘어가는 것을 우려한 미국과 일본의 의견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 등으로 반도체 굴기가 정체를 빚자 공격적인 M&A와 반도체 인재 영입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대만 TSMC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을 영입하기도 했다.
고쿠사이 일렉트릭은 반도체의 주재료인 웨이퍼에 전기회로의 기본 막을 만드는 성막(成膜)장치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다. 어플라이드는 이번 인수로 5G 시대를 맞아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AMD, ARM, 애플 등에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텔은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기존 밥 스완 CEO를 경질하고, 클라우드컴퓨팅 기업 VM웨어의 CEO인 팻 갤싱어가 영입될 예정이다. 신임 CEO는 과거 인텔 CTO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인텔의 내부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 기술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인텔의 CEO 교체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 기간에 알려져 더 눈길을 끌었다. CES에서 밥 스완 CEO는 외부 파운드리 활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이른바 ‘아웃소싱 칩’ 발언으로 반도체 시장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CES가 끝나기도 전에, 또 현직 CEO가 주요 무대에서 회사 비전을 밝힌 직후 교체설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반도체 업계의 지각변동이 연초부터 빠르게 진행되면서 업계는 삼성전자의 행보에도 주목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해 인텔 낸드 메모리사업을 10조 원에 인수하며 ‘빅딜’ 대열에 합류했다. 글로벌 최대 반도체 종합 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파운드리와 같은 분야에서 초격차를 구현하기 위해 M&A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올해 반도체 업계는 슈퍼사이클과 함께 반도체 부족이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GPU, 자동차 반도체,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등 전반적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생산시설 투자와 핵심분야에서의 M&A 등에 업계가 관심을 나태는 이유다. 올해 삼성전자의 투자계획은 이달 28일 열리는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구체적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M&A는 여전히 변수가 많다. 특히, 오는 18일 최종 선고되는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이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규모 금액이 집행되는 사안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의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해소는 코로나19 사태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한국 경제에 큰 호재가 될 수도 있다”며 “삼성은 물론이고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재계 전체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