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탓 2017년보다 옥중경영도 더 어려워…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뒤처질 우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선장 잃은 삼성의 경영 행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은 당분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겠지만, 한계가 뚜렷해 상당 기간 경영에 차질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역시 늦춰지면서, 포스트 코로나·4차 산업혁명의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삼성의 비상경영은 2017년 이 부회장 구속 당시처럼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 외에는 딱히 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일단 삼성전자의 경우 김기남 DS 부문장(부회장)을 비롯해 김현석 CE 부문장 사장과 고동진 IM부문장 사장 등 현 경영진이 부문별로 경영을 책임지는 가운데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가 각 회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 시너지 약화, 신규투자 지연 등의 전철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2018년 2월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을 중심으로 탄생한 ‘미니 컨트롤타워’격인 각 TF는 역할의 한계와 부정적인 시선 등으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삼성 한 관계자는 “미래 성장 동력이 아니라 당장 생존을 고민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됐던 2017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삼성은 대규모 투자계획과 사장단 인사가 연기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에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이 더 클 것이란 관측이 많다. 코로나19란 특수 상황에다 경영권 승계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탓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이 부회장의 일반 접견은 최소 4주간 중지되고, 면회도 변호인을 통하거나 스마트폰 등 전화 접견만 가능하다.
게다가 이 부회장은 회사 업무 외에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 정리와 막대한 상속세 재원 마련도 옥중에서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대규모 투자와 M&A 역시 멈출 위기다. 특히 수십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옥중에서 결정하는 건 쉽지 않다. 개별 기업 CEO가 과감하게 투자 결정을 내리기에도 지나치게 큰 규모다.
이 부회장은 2017년 7월 구속 상황에서도 2021년까지 반도체 분야 30조 원 투자를 결정한 적이 있지만, 이미 검토되고 계획돼 있던 내용을 승인한 형식이었다.
결국, 삼성전자의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증설 등 국내외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 발표도 한동안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최근 글로벌 시장은 급변했다.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분쟁 등 글로벌 복합 악재가 산재해 있다. 삼성이 몇 년 새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M&A을 추진하면서 산업 지형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대형 M&A는 멈춰있다.
삼성 관계자는 “2017년에도 이 부회장이 옥중 경영을 했지만 이미 투자계획이 있던 의사결정만 가능했다”며 “새로운 대규모 투자나 M&A 등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의 의사결정은 힘들 것”이라고 봤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오늘의 삼성은 IMF 외환위기를 혁신의 전기로 삼았기에 가능했다”며 “앞으로 1~2년은 많은 산업에서 구조 개편의 소용돌이가 일어날 것인데, 이 시점에 투자와 구조조정의 실기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삼성뿐 아니라 정부 역시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시스템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 등 미래 신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1993년 고(故)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전파한 고인수 전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은 “국가는 기업인들을 격려하고 북돋아 줘서 성장하게 하는 게 함께 잘 사는 길인데, 우리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며 “삼성의 오너 부재는 삼성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에도 엄청난 위기”라고 토로했다.
삼성전자가 이번 오너 부재 상황에서 버티기 위해선 전문경영인과 이사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러나 한계가 있는 만큼, 재계 일각에선 과거 미래전략실처럼 그룹 현안을 토론하고 의사를 결정할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는 “다양한 계열사를 두고 있는 삼성 같은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그래야 계열사 간 사업과 인력 관리, 비용 효율성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고, 계열사 CEO들의 도덕적 해이를 통제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기대감도 나온다. 이날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이 부회장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과하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46.0%로 집계됐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재용 부회장도 요건만 맞으면 가석방 대상자로 분류될 수는 있다”며 “다만 사건의 성격상 삼성 측에서 굳이 몇 개월 더 빨리 나오려고 신청할 것인지, 법무부에서 이를 받아들여 줄 건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