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취득세 중과 법안' 잇따라 발의
정부 '조세협약 상호주의 위배' 우려
국내 아파트나 상가를 사들이는 외국인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이들이 부동산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부동산판 '쇄국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인, 강남 등 고가 아파트 투자
지난해 외국인이 법원에 신고한 한국 내 집합건물(아파트나 다세대주택, 상가 등 각 부분 소유권이 독립된 건물) 매입 건수는 1만9370건이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다다. 지난해(1만7492건)보다도 1878건 늘었다.
지난해 한국에서 집합건물을 산 외국인 가운데 70% 가까이가 중국인(1만3416건)이었다. 미국인(2745건)과 캐나다인(951건), 대만인(417건), 호주인(248건)이 그 뒤를 이었다.
외국인의 국내 집합건물 매입 양상은 국적에 따라 달랐다. 중국인의 집합건물 구매는 경기 부천시(1313건)와 안산시(905건), 인천 부평구(781건) 순으로 많았다. 주변에 공장지역이 있어 중국인 노동자가 많은 곳이다. 서울에선 금천구(251건)와 구로구(170건), 영등포구(117건) 등 중국인 주요 거주지를 중심으로 아파트ㆍ빌라ㆍ상가 매입이 활발했다.
미국인은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경기 평택시(98건)에서 집합건물을 가장 많이 사들였다. 서울 강남구(50건)와 경기 성남시(66건)ㆍ김포시(48건), 서울 서초(47건)ㆍ용산구(45건) 등 수도권 고가 아파트 밀집지역에서도 투자를 많이 했다.
부동산 시장에선 외국인의 한국 부동산 쇼핑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이 주택을 매집해 집값을 올리고 있다는 적대감이다. 대출 규제 등으로 내국인도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든 부동산 정책과 맞물리면서 이 같은 심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부동산 투자 카페 등에선 홍콩계 자금 유입설이나 외국 장관이 강남 아파트를 매입했다는 소문 등이 심심찮게 돌아다닌다.
외국인이 주택 구매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은 반감을 더 키운다. 정부는 외국인도 부동산 관련 세금이나 국내 은행 대출 규제는 내국인과 같게 적용받고 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국에서 자금을 들여올 땐 대출 규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세청은 외국인 부동산 투자를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국세청은 임대소득 탈루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외국인 다주택자 42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주택 구매 후 실거주하지 않는 투기 의심 외국인은 상대 국가와 과세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사전 조사 과정에서 일부 외국인이 충분한 소득 없이 국내 고가 아파트를 수채씩 사들인 것을 파악했다.
아예 취득 단계에서부터 외국인이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들겠다는 입법 논의도 활발하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외국인의 투기성 부동산 매입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민주당은 정부와 함께 외국인 부동산 매입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주택 취득세율을 내국인보다 중과(重課)하자는 법안은 지난해에만 여야 의원 6명이 각기 발의했다. 이 가운데는 외국인에게 내국인보다 취득세율을 31%포인트(%) 높이자는 법안도 있다. 취득 문턱을 높여 외국인 부동산 투기를 막고 있는 싱가포르나 캐나다와 비슷한 방식이다. 외국인에게 부동산 거래 허가제를 도입하자거나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없애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정부는 차별적 과세로 외국인 부동산 투자를 막는 데 대해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재영 행정안전부 차관은 지난해 국회에서 외국인 취득세 중과 법안에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국인에 비해 중한 취득세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상호주의에 위배될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ㆍ외국인 투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국제 조세협약에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같은 이유로 외국인 취득세 중과 법안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외국인 부동산 투자가 진정세로 돌아선 점도 정부가 규제 강화를 망설이는 이유다. 지난 여름 1800건을 웃돌았던 외국인의 집합건물 매입은 겨울 들어선 1600건대로 줄었다. 취득세ㆍ보유세ㆍ양도세를 강화한 세제 개편이 외국인에게도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정부 해석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내ㆍ외국인 부동산 투자를 차단하는 건 국제투자협정 정신에 어긋난다. 자칫 국가 간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금융 등 외국인 부동산 거래에 관한 정보를 면밀히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