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동료들은 노래방 도우미들이랑 놀고, 나는 노래를 불렀다.”
공공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여성과학기술인 A 씨가 타 연구기관에 있는 동성(同姓) 선배한테서 들은 조언(?)이다. 조직에 스며들기 위해 노래방 술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이 선배는 자신을 남초(男超) 조직에 잘 스며드는 ‘쿨’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A 씨는 조직이 여성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없는 것 같아 고민이다.
또 다른 여성 과기인 B 씨는 여자 동기가 없다. 건설 건축 분야 전공이라 여자가 드물긴 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여자 동기 모두 전공을 바꾸며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학창시절, “터널 공사 때 여자가 들어오면 무너진다”라는 말을 현장에서 들을 때마다 힘이 빠졌다. 남들보다 배로 노력을 들이며 학업을 마치니 또 고비가 찾아왔다. 이 악물고 버텨 겨우 돌아온 면접 기회. B 씨는 연구나 실적에 관한 질문이 아닌 개인사에 대해 방어를 해야 했다. 면접관은 질문 앞에 늘 ‘만약’을 붙였다. 남편과 같은 지역이 아니라면, 남편이 지역을 옮기라 종용한다면 등의 상황을 전제하고 몰아붙였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남편과 상의해 결정할 만한 사적 부분을 방어해야 하는 데 피곤함을 느꼈다. “아기가 있으면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남자라면 받지 않았을 질문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입사하더라도 ‘버티기’는 쉽지 않다. 남초 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탓이다.
C 씨는 “업무 과정에서 (여성이) 지시할 때는 왜 이걸 따라야 하는 식으로 반발하고, 남자 선배가 말할 때는 말없이 따르는 후배를 다루기 어려웠다”라며 “또 조직에 적응해도 임신·출산을 이유로 경력이 위태롭다 느끼곤 했다”라고 고백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과기인의 성장은 쉽지 않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가 국내 3374개 이공계 대학과 공공·민간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8년도 여성과학기술인력 활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기술연구개발 인력은 총 23만5097명이고, 그중 여성은 4만7028명으로 20.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총개발인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동안 불과 2.6%포인트 느는 데 그쳤다. 남초 등 연구기관 환경에 경력단절 문제가 더해져 여성 과기인의 근속 비율도 대체로 남성에 비해 낮다. 5년 미만을 근속한 여성 과기인의 비율은 57.0%에 이른다. 하지만 20년 이상 근속자의 경우 남성은 14.5%인 반면 여성은 6.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성 과기인이 경력을 본격화할 기반이 전혀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재미 여성과학기술인 문성실 박사는 “여성이라서, 여자라서 안된다는 연구소 내 분위기가 많으면 아무래도 힘들다”라며 “배려라 생각하기보다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