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구속 위기를 면했다.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구속 필요성을 심리한 뒤 9일 오전 0시 30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고 범죄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사실과 그로 인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사실이 모두 증명돼야 한다. 이러한 불확정개념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범죄를 해석·적용할 때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해석의 원칙과 최소침해의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는 취지다.
또 오 부장판사는 “이미 주요 참고인이 구속된 상태고 관계자들의 진술이 확보된 상태이어서 피의자에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백 전 장관은 전날 오후 2시 10분 영장심사에 출석하면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국정과제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관 재임 때 법과 원칙에 근거해 적법 절차로 업무를 처리했다”며 “오늘 영장실질심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는 4일 월성 원전 사건과 관련해 백 전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백 전 장관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해 당시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하고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산업부 공무원들의 원전 관련 자료 삭제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앞서 구속기소 한 산업부 공무원 2명을 상대로 원전 관련 내부자료 파기 과정을 조사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백 전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산업부가 한수원 신임 사장 경영성과협약서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이행 등을 포함하도록 하는 데에도 백 전 장관이 개입했다고 의심한다.
검찰과 백 전 장관의 공방이 길어지면서 전날 오후 2시30분부터 진행된 영장심사는 심문 6시간여 만인 오후 8시50분 종료됐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직권을 남용해 한수원과 관계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월성 1호기 관련 업무를 방해했다고 봤다.
반면 백 전 장관은 원전의 즉시 가동중단을 지시하거나 경제성 조작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지금 단계에서 검찰이 제시한 자료만으로는 백 전 장관을 구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백 전 장관의 신병확보에 실패하면서 수사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채희봉 전 산업정책비서관 등 청와대 윗선을 향한 수사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서류를 삭제한 혐의 등을 받는 산업부 전 공무원 3명은 이미 기소돼 3월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