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금융위가 추구하는 전자금융거래법의 골자는 두 가지다.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관련 업종 간 기능을 통폐합하는 것과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가장 큰 관심은 새로 도입하려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의 최소자본금은 200억 원 수준으로서 신용카드사와 같다. 왜 그래야 할까?
핀테크에게 맡겨질 종합지급결제사업은 기존 금융기관의 역할에 성큼 다가선다. 은행을 제치고 직접 수신하는 데다가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그러므로 높은 수준의 자본금을 요구하고 규제 수준을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달리 말해서 종합지급결제사업은 현재 선불과 직불 결제서비스만 허용된 빅테크에게 은행업(요구불예금)과 신용카드(후불결제) 사업까지 허용하는 것이다. 그 일은 은행법과 여신전문금융업법을 다루는 금융위 금융산업국의 소관이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금융을 앞세워 금융위 내 금융혁신기획단이 가로채겠다는, 찻잔 속의 용쟁호투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의 민낯이다.
똑같은 후불결제인데 다루는 법률이 다르다 보니 카드로 결제하면 신용카드업이요, PC나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면 종합지급결제업이다. 금융거래의 속성이 아닌 단말기를 기준으로 한, 이런 식의 업종 분류는 지극히 어설프고 혼란스럽다. 기존 법률과 업무체계를 흔들어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은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영업 허가와 규제 신설은 정부의 영역이다. 이를 ‘빅브라더법’이라고 싸잡아 힐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감정은 밝혔지만, 문제의 핵심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금융을 포함하여 개인 간 송금과 추심, 유가증권 거래, 외국환 매매 등 거의 모든 금융활동은 한은에 예치된 지급준비금의 조정을 통해 완결된다. 그런데 현행 한은법에는 그에 해당하는 근거가 없다. 은행법에 있는 ‘내국환 업무’라는 말조차 한은법에는 없다. 현재 한은의 내국환 업무는 ‘혼외자식’인 셈이다.
한은의 내국환 업무에서 절대적 위치에 있는 금융결제원과의 관계는 한은과 상업은행 간의 자율적 예금계약과 법무부 소관의 어음법·수표법을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 마당에 금융위가 소관 법률을 통해서 금융결제원과 업무관계를 공식화하려니까 한은이 덜컹 자식을 잃는 듯한 패닉에 빠졌다. 귀한 자식을 그동안 호적에 올리지 못했던 만시지탄이다.
결론적으로 ‘종합지급결제업’은 환상이다. 이미 각기 존재하는 은행업과 선불, 직불, 후불 결제사업을 함께 묶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거기에 한은의 패닉이 더해져서 굉음이 빚어졌다. 지금의 사태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해결책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서 거품을 줄이는 것이다. 존재자의 수를 자의적으로 늘리지 말라는 ‘오컴의 면도날’을 기억하라. 은행에 보험이 결합된 방카슈랑스가 새로운 업종이 아니듯이 은행업과 선불, 직불, 후불 결제사업을 결합한 것이 새로운 업종은 아니다. 그냥 신규 허가일 뿐이다. ‘종합지급결제사업 신설’은 ‘은행과 신용카드사 신설’의 완곡한 표현인 것이다. 논란이 많은 일을 가급적 들키지 않으려는.
반드시 늘려야 하는 존재자도 있다. 내국환 업무 즉, 한은과 금융결제원 간의 관계를 한은법에 담는 것이다. 금융결제원은 한은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금융결제원의 존재 이유와 주업은 지급준비금 조정을 위해 한은과 협업하는 것이요, 혹시 금융위가 다른 일을 맡기더라도 그것은 부업일 뿐이다. 그 사실을 밝히면, 터널 끝도 비로소 밝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