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석좌교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다나카는 이러한 우려를 다음과 같은 취임사로 불식했다고 하며 실제 어려운 경제상황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여러분은 천하가 알아주는 수재들이다. 나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고 세상 경험은 어느 정도 했지만 대장성 일에는 깜깜하다. 여러분은 재정, 금융의 전문가들이다. 앞으로 나를 만나고 싶을 때는 형식과 절차를 따지지 말고 언제든 오라. 여러분은 본인의 일을 주저 없이 과감하게 추진하기 바란다.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수장인 내가 지겠다.”
이 일화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다나카의 장점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이기는 하지만,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 시사점의 첫째는 책임은 리더가 진다는 점이다. 굳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공공 부문이 아닌 기업이나 다른 민간 부문이라도 책임은 리더가 지고 공은 실무진에 돌리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반대로 공은 윗사람에게 책임은 아랫사람에게 돌아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실무진만이 모든 책임을 지게 되면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을 바라기 어렵다. 정책이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다 가지는 것인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실무자 어느 누구도 책임지고 소신 있게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리더가 책임을 과감히 진다는 것은 물론 그 개인의 책임감, 겸허함 등의 미덕에 뒷받침되는 바 크다. 그러나 만사를 개인의 덕성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이러한 원칙을 세우는 것은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이라는 현실적 필요에 의한 것이다.
시사점의 또 하나는 실무진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직의 장이 모든 것을 다 잘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그렇게 다 아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 장관은 정책의 큰 방향을 정하고 실무진이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는 것이 맞지 모든 것에 장관이 미주알고주알 관여하면 실무자는 윗사람 눈치만 보고 소신 있게 일을 하지 못한다.
이 경우는 정치권과 행정부 간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어떤 정책이든 큰 틀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반은 다름 아닌 선출된 권력의 대표 격인 대통령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그의 임기 내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 정책의 큰 방향이며, 그 방향은 선거공약이든 임기 중 새로 설정되는 것이든 정치적 과정을 거친 것이면서 또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다.
큰 방향은 이와 같이 설정되지만 그 세부적인 사항들은 전문가, 실무진의 힘에 의해 확립될 수밖에 없다. 이때가 바로 실무자 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서로 소통해야 할 시기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방향이라도 그것을 실제로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생각지 못한 부작용 등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지적하고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적임자들이 실무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무자나 현장 전문가도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그럴수록 의견교환과 토론이 필요하고 그래서 소통이 요구되는 것이다.
활발한 토론과 신중한 검토를 거쳐 합의된 정책만이 채택되어야 하며, 그렇게 결정이 되어야만 잡음 없이 한목소리로 정책이 추진될 수 있고, 정책의 대상자인 국민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다. 과감하고 신속한 추진도 중요할 때가 있지만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더디더라도 신중해야 할 경우가 훨씬 많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즉, 빨리하려고 들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했다. 리더는 듣고, 또 듣고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