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과 함께 얼어붙었던 극장가에도 훈풍이 불었다. 화제의 영화 ‘미나리’가 개봉하면서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극장가가 북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침체된 영화계가 ‘미나리’ 효과를 톡톡히 보며 다시 활기를 띌 수 있을지 주목된다.
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미나리’는 지난 주말 사흘(5∼7일) 동안 20만4698명(37.8%)의 관객을 모았다. 지난 3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은 27만6869명이다.
‘미나리’는 개봉 첫 주 주말에만 2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미나리’가 불러온 봄바람에 토요일인 6일에는 하루 관객 수도 22만 2000여 명을 기록했다. 극장 하루 관객 수가 20만 명을 넘긴 것은 ‘도굴’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이 개봉했던 지난해 11월 15일(21만6000여 명) 이후 111일 만이다.
‘미나리’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해 국내 흥행에도 탄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나리’는 공개 직후부터 주요 비평가협회상을 포함해 세계 영화 시상식을 휩쓸었다. 골든글로브까지 75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CGV 커뮤니케이션 황재현 팀장은 이투데이에 “코로나19로 극장가가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한 ‘미나리’의 개봉으로 인해 주말동안 관객들이 극장을 많이 찾았다"며 "CGV골든에그지수가 93%를 기록하고 있고, 콘텐츠 자체의 힘이 있기 때문에 이같은 성과를 낸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나리’는 15일 아카데미 후보작 발표가 있고, 4월 수상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장기 흥행행까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 남부 아칸소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다. 영화의 매력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미국적인 이야기를 그린 점이다. 이는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가 제작한 미국 영화이지만,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다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규정에 따라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이로 인해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에 오르지 못했다. 외신들은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이 아닌 작품상을 받을 작품이라며 골든글로브 주최 측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 ‘미나리’의 화제성이 커지는 만큼 콘텐츠 업계의 고민도 늘어나고 있다. 불법 복제물 유통 때문이다. 3일 개봉한 영화의 불법 복제물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영화의 수입·배급을 맡은 판씨네마 측은 “명백한 저작권 침해이자 범법행위이므로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에서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한 윤여정에 대한 활약이 주목된다. ‘미나리’로만 여우조연상 28관왕에 등극한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한국 배우 최초로 노미네이트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영화에서 “원더풀 미나리!”라고 외친 그는 연기 인생 55년 만에 ‘원더풀’ 최전성기를 맞았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미나리’의 사랑스러운 할머니 역을 맡은 윤여정이 비평가상을 주도하고 있다”며 “만약 윤여정이 수상한다면 1957년 ‘사요나라’의 일본 배우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오스카 역사상 조연상을 받은 두 번째 아시아 여배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제는 오스카상 수상 여부가 관건이다. ‘미나리’는 지난달 9일 예비후보 발표에서 음악상과 주제가상 부문에 먼저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15일 최종 후보 발표 때 ‘미나리’가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고,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미나리’도 ‘기생충’과 같은 길을 걸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