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비좁잖아. 두고 봐. 앞으로 땅만 한 노다지가 없을 테니까."
고아 출신으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해결하던 넝마주이 출신 종대(이민호 분).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건 강남 복부인 민 마담(김지수 분)이 던진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민 마담은 종대에게 땅으로 돈 버는 법(기획 부동산 사기)을 가르쳐준 다음, 선뜻 큰돈을 주며 압구정에 좋은 기회가 있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어차피 갈 곳도 잃을 것도 없는 종대는 민 마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종대는 강남 땅을 둘러싼 이권 싸움의 최전선에 선다. 영화 '강남 1970'(Gangnam Blues, 2015)이다.
종대가 처음 부동산에 눈을 뜬 건 집이 사라지고 갈 곳을 잃으면서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용대(김래원 분)와 살던 판잣집이 개발의 풍파 속에 무너지고, 두 사람은 거리에 나앉게 된다. 굴착기를 들이밀며 집을 부순 건달 때문에 우연히 패싸움에 낀 두 사람은 난리 통에 헤어지고 만다. 마땅히 갈 곳 없이 생이별한 두 사람은 살아남고자 건달이 된다.
이야기의 처음, 두 사람이 간절히 바란 건 집이었다. 내 한 몸 편히 뉘울 수 있고 아랫목이 있는 '따뜻한 집'이다. 하지만 종대와 용대 모두 거친 건달 생활을 겪으며 따뜻한 집에 대한 소망을 점차 잊는다. 소망이 사라진 마음 속 빈자리에는 '부동산'이라는 욕망이 자리한다. 영화는 두 남자를 중심으로 1970년대 강남 개발을 둘러싼 욕망의 각축장을 그리며, 집과 부동산의 의미를 묻는다.
1970년대 시작된 강남 개발은 한국 부동산 불패 신화의 시작이었다. 뽕 따고 밭 갈던 한강 이남 영동의 상전벽해(桑田碧海)는 한국인의 DNA에 부동산 불패 신화를 뿌리깊게 심었다. 1960년대 1평(3.3㎡)당 400원 남짓이었던 강남 지역 땅값은 1966년 제 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 착공 이후 3000원대까지 올랐다. 이후 계속 오르던 강남 땅값은 남서울 계획 발표 뒤 수직 상승해 1971년 1평당 1만4000~1만6000원까지 올랐다. 10년 새 40배 넘게 오른 셈이다.
당시 투기 열풍을 타고 졸지에 부자가 된 '졸부'와 '복부인'이 처음 등장했다. 복덕방 부인 혹은 복을 받은 부인이라는 뜻에서 복부인이라 불린 이들은 당시 핸드백에 고액 현금을 넣어놓고 땅을 보러 다니며 부동산 투기에 앞장섰다.
부동산 투기업자 중 여성이 많았던 건 부동산 개발 정보를 알고 있지만, 직접 나설 수 없었던 고위층 대신 아내와 딸이 투기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강남 땅값이 오르며 졸지에 부자가 된 이들도 있었지만, 강남 개발의 수익은 원래도 힘과 권력이 있던 이들에게 돌아갔다.
영화 '강남 1970'에서도 강남 개발의 달콤한 수익을 맛본 건 결국 힘 있는 이들이었다. 이권 다툼의 최전선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용대와 종대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극 초반 민 마담의 대사처럼 말이다. "어차피 땅값은 힘 있는 놈들 펜대에서 나오는 거니까."
1970년이 강남이었다면 2021년은 시흥이다. 이른바 'LH 사태'라 불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은 50년 전 강남과 몹시 닮아있다. 유혈이 낭자한 건달들의 이권 싸움은 없지만, 그보다 교묘한 왕버들이 뿌리 내렸다. 정보를 독점한 일부 계층은 부동산 불패 공식을 공고히 하며 또 다른 강남을 재현하려 했다.
정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는 모든 공직자의 재산 등록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대안으로 고위공직자 부동산 백지 신탁도 거론된다. 백지 신탁제는 고위공직자가 주거용 1주택 등 필수부동산을 제외한 다른 부동산 보유를 금지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미 한국인의 DNA에는 '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렬하게 새겨져 있다. 게다가 부동산은 시장이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정부가 억누를수록 부동산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부동산 불패 신화, 과연 꺼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