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조성 시스템 전면 개편 필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논란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신도시 조성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와 LH 주도의 하향식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공공택지 조성사업의 공공성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집값을 잡기 위한 카드로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하는 데는 신도시 건설에 참여했던 전직 관료들도 고개를 저었다. 수도권 2기 신도시 건설 당시 실무를 이끌었던 정창수 전 국토해양부 차관은 "과거엔 대규모 택지 공급이 시장 가격을 내릴 수 있었지만, 이젠 같이 오르는 처지"라며 "2기 신도시를 끝으로 신도시 건설을 멈췄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교통부 전신기관들에서 도시 개발 정책을 오래 맡았던 전직 고위 관료도 "도심 주택 수요를 공급이 못 쫓아가면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200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신도시 개발에 따른 기대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정 전 차관은 LH가 쥐고 있는 개발권을 민간에 넘길 것을 조언했다. 그는 "LH가 전국 택지 개발과 도시 개발을 도맡아 하다 보니 정보 독점이 생겼다"며 "제도적으로 투기 위험이 잉태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민간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분양주택 건설을 왜 공공에서 해야 하나. LH는 스마트시티, 도시재생, 임대주택 관리만 해도 버거운 처지"라면서 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혼부부 등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을 제외하곤 나머지 영역은 민간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을 맡고 있는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가 내놓은 진단과 해법도 비슷하다. 서 교수는 "장기적인 수급(주택 수요와 공급) 계획에 따라 주민과 협의를 거쳐서 택지를 조성해야 했는데 갑자기 신도시를 공급하다 보니 사달이 났다. 여기에 LH가 정보를 독점하면서 문제를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주민과 협의해 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론 신규 택지 개발을 지양하고 도심 재개발 및 콤팩트시티(건물을 높게 올려 주거·상업 등 도시 주요 기능을 집약하는 도시 개발 방식) 건설로 주택 공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민사회에선 신도시를 개발하더라도 지금보다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도시 내 공공택지가 민간 건설사에 매각되면서 주거 안정이란 취지와 달리 비싼 값에 분양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일각에선 택지가 토지주에서 LH와 건설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상비가 과다하게 집행된다고도 지적한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주거 안정을 위해서 신도시를 건설하고 공공사업자에 수용권을 주는 것인데, 토지 사용 후엔 공공성이 점점 약해진다. 공공택지 사업의 최종 목적이 땅을 파는 것처럼 변질됐다"며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공공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의사 결정 구조를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LH가 신도시 안에서 책임지고 공공주택을 공급하되 LH 재원만으로 어렵다면 연기금이나 주택도시기금 같은 공적자금으로 보조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