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수십, 수백억이 오가는 숨 가쁜 전쟁터 월 스트리트. 리스크 관리 팀장 에릭(스탠리 투치 분)은 19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하루 만에 해고당한다. 패잔병처럼 회사를 떠난 그는 후배 피터(재커리 퀀토 분)에게 USB를 하나 남긴다.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MIT 박사 출신 피터는 에릭이 남긴 리스크 자료를 분석하다가 금융 상품으로 인해 곧 회사가 파산할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직원의 절반 이상이 정리 해고된 잔인한 날.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더 잔인한 선택을 한다. 영화 '마진콜'(Margin call, 2011)이다.
영화 마진콜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전, 월스트리트의 한 금융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실제 회사나 인물의 이름을 내세워 복잡한 경제 상황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90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가 집중하는 건 월 스트리트 전반에 깔린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Moral Hazard)다.
작품 속 금융회사의 회장 존(제레미 아이언스)은 자신들이 보유한 금융 상품이 곧 휴짓조각이 알면서도 고객사에 팔아 치우라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선 1등이 되거나, 더 똑똑해지거나, 사기를 쳐야 한다"면서 말이다. 이를 반대하거나 망설이는 직원들에게는 엄청난 보너스를 제시한다.
당시 문제가 생긴 금융 상품은 모기지담보증권(MBS)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상품 중 하나다. 2008년 당시 MBS를 보유하거나 미처 처분하지 못한 금융회사들은 마진콜에 직면해 큰 위기를 겪었다. 리먼 브라더스처럼 파산한 회사도 있었다. 연이은 금융사의 연쇄적 부실은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마진콜은 헤지펀드 등이 이끄는 선물이나 투자 상품에 손실이 발생했을 때 증거금이 모자라면 이를 보전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증거금의 부족분을 채우라는 "전화(Call)를 받는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마진콜을 받으면 투자자 및 금융회사는 빠르게 증거금을 보전해야 한다. 만약 마진콜 요구에 응하지 못하면 거래소는 반대매매를 통해 계약을 끝낸다.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2021년 4월 현재 월가도 마진콜로 시끄럽다. 지난달 26일 정체 모를 판매자가 팔아치운 대규모 블록딜로 뉴욕증시가 출렁거렸다. 블록딜의 배후에는 한국계 미국인 펀드 매니저 빌 황이 이끄는 아케고스 캐피털이 있었다. 아케고스가 레버리지를 이용해 대량 매수했던 중국 기술주가 하락하면서 동시다발적인 마진콜이 유발됐고, 그 결과 대규모 블록딜이 일어났다.
외신은 이번 사태가 "돈만 많이 벌면 뭐든지 OK"라는 월가의 투자 방식이 바탕에 있다고 지적했다.
블록딜 쇼크 배후로 꼽힌 빌 황은 이미 한차례 내부자 거래로 문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는 2012년 헤지펀드 ‘타이거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다가 2012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중국 은행주를 거래하다 6000만 달러 이상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야기 초반, 세스(펜 바드글리 분)는 동료 에릭에게 23세의 나이에 25만 달러의 큰돈을 벌었다며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한 게 뭔데? 컴퓨터로 숫자 가지고 논 게 다야. 다들 잘 알지도 못하는 정보를 주무르면서…누군가는 따고 누군가는 잃는 거지. 이거 아니면 도박판에나 갈 사람들이야."
자랑 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그의 솔직한 고백에는 주식 시장과 욕망 가득한 월가에 대한 회의가 담겨 있다. 하지만 세스도 에릭도 무엇 하나 제대로 바꾸지는 못했고, 제한 없는 욕망의 끝에는 마진콜의 전화벨 소리만 가득했다. 2021년에도 월가의 모럴 헤저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월가에는 욕망의 전화벨 소리가 멈추지 않고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