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선관위가 '내로남불' 현수막 표현을 불허한 이유는?

입력 2021-04-0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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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위선'·'무능' 등의 표현을 투표 독려 현수막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는 "해당 문안은 특정 정당을 쉽게 유추할 수 있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표현이므로 일반투표 독려용으로는 사용 불가하다"고 설명했지만, 선관위의 조치가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을 '내로남불' 정당이라고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5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방문 한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선관위의 공정성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 "내로남불, 특정 정당 유추할 수 있어 사용 불가능"

국민의힘 사무처는 최근 선관위에 "투표가 내로남불을 이깁니다"·"투표가 위선을 이깁니다"·"투표가 무능을 이깁니다"라는 투표 독려 문구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이에 선관위는 "특정 정당(후보자)을 쉽게 유추할 수 있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표현이라서 사용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고 당 관계자는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캠프 박용찬 대변인은 3일 성명을 통해 "해당 표현은 막말도 아니고, 저속한 표현도 아니다. 이게 불법이라면, 이 나라엔 적어도 절반 이상의 국민이 모두 범법자가 되는 셈"이라며 "결국 선관위는 집권 여당이 위선적이고 무능하며 내로남불 정당이라는 사실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냐"고 비판했다.

이어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이가 없을 뿐"이라고도 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과 '투표 독려 문구'는 적용받는 규정이 다르다. 선거운동은 허위사실이나 비방 등을 제외하면 다양한 표현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법 제58조 2항에 따르면, 유권자에게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를 할 땐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사용할 수 없다.

선관위의 결정에는 공직선거법 90조도 적용됐다. 공직선거법 90조는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시설물 등에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사진 또는 그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한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고 금지 문구를 규정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정치참여 권리를 불허한 선관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 현수막 문구도 불허

선관위의 투표 독려 문구 허용을 둘러싼 논란은 선거 때마다 반복돼왔다. 시설물의 투표 독려 문구가 단순히 투표를 독려하는 내용인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를 해석하는 선관위의 판단을 놓고 '고무줄 잣대'를 적용했다는 논란이 매번 불거졌던 것이다.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한 단체의 현수막 문구도 선관위에 의해 불허됐다. 앞서 여성단체 190여 곳으로 구성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공동행동)'은 해당 문구로 현수막을 걸고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번 보궐선거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으로 인해 치르는 선거라는 점을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선관위는 해당 문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이라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행동 측은 또한 "대안으로 낸 '우리는 성평등에 투표한다', '우리는 페미니즘에 투표한다'는 문구 또한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특정한 정당이나 후보를 떠올리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젠더 폭력 문제로 시작된 보궐선거가 '젠더 없는 선거'가 됐다"고 비판했다.

▲2021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시장 후보들의 현수막이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에 걸려 있다. (뉴시스)

작년 총선 "100년 친일(親日) 청산 투표로 심판하자" 허용했다 불허

작년 총선에서 선관위는 "100년 친일(親日) 청산 투표로 심판하자"라는 문구를 허용했다가 본 투표 이틀 전에야 불허했다. 당시 문구를 허용했던 이유에 대해 선관위 측은 "100년은 과거 친일을 모두 아우르는 표현으로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반대하거나 특정 정당을 유추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대선 당시에는 한 시민단체가 내걸었던 "촛불이 만든 대선! 미래를 위해 꼭 투표합시다"라는 투표 독려 현수막 문구가 불허됐다. 당시 선관위는 공문을 통해 "촛불·태극기 집회는 조기 대선 실시의 찬성·반대 및 정당·후보자의 지지·반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이런 표현을 사용해 투표 참여 권유활동을 하는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므로 현수막을 조속히 철거해달라"고 참여연대에 요청했다. 선관위는 또 "촛불이 앞당긴 선거, 투표 참여로 꽃 피우자!"라고 적힌 다른 시민단체의 현수막도 철거를 요청했다.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5일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를 방문해 항의하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선관위 "규제 위주 지적엔 공감…개정의견 제출할 예정"

선관위는 공직선거법과 관련해 "모든 정당·후보자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말하고 있다. 다만 해당 선거법 조항이 국민의 법 감정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규제 위주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선관위는 지난달 26일 배포한 설명자료를 통해 "공직선거법 제90조와 제93조는 후보자 간 선거운동의 기회 균등을 보장하고 불법행위로 인한 선거의 공정성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법을 집행해야 할 책무가 있으며 모든 정당·후보자 등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현행 공직선거법 제90조‧제93조 등이 선거운동 및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여 국민의 법 감정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규제 위주라는 지적에 깊이 공감한다"며 "선관위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개선된 선거문화를 고려해 선거운동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확대하고 보장하는 내용으로 개정의견을 국회에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제출한 바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재·보궐선거일 이후에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개정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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