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성이 확보됐지만, 규제에 묶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해외 진출 등 나름의 활로를 모색 중이다.
◇ 골자만 존재하는 ‘가명정보’, 사업 실효 無 = 명시적 금지뿐 아니라 모호한 규제 또한 리스크로 꼽힌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해 9월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하는 경우 적절한 가명처리를 하고 데이터 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가명정보는 개인정보의 일부를 삭제하거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추가정보 없이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한 정보다.
이투데이와 만난 A 스타트업은 현실적으로 가명정보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의원 방문 시각이나 질병, 과금 내역 등 금융정보나 위치정보를 결합하면 충분히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것. 향후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 언제든 비식별된 개인정보가 재식별될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라고 덧붙였다.
A 스타트업 대표는 “그런데도 비식별화, 가명정보라는 모호한 뼈대만 세워놨다”라며 “임원진 내부에서도 그냥 밀어붙이자는 의견, 규제에 맞게 맞춰가고 기다리자는 의견이 나와 격렬하게 다퉜다. 그래도 워낙 리스크가 크니 순응하자는 결론이 나왔다”라고 전했다.
의료법 제19조 1항에서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 제21조 2항에서는 ‘의료기관 종사자는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전히 환자 기록을 민감정보로 분류해 활용을 제한하고 있어 기업이 보건데이터 활용에 난항을 겪고 있다.
◇ 규제 선회,정면돌파 갈림길에 선 스타트업들 = 시장은 규제에 묶여 있는데, 창업 및 투자는 이어지는 추세라 경쟁은 치열하다. 그 결과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업종은 제품서비스 일체형 기기나 단품 형태의 완제품에 편중됐다. 규제로 경직된 시장에서 나름의 활로를 찾은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규제샌드박스 시행 2년 주요 사례’에서 다뤄진 헬스케어 스타트업도 대부분 실증특례를 받아 심전도 측정, 휠체어 등의 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의료법 규제나 모호한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리스크를 지기보다 하드웨어 생산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대면 진료, 만성 질환 모니터링, 원격 복약지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추세와 동떨어져 있다.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라인 헬스케어 주식회사는 온라인 진료 서비스 ‘라인 닥터’를 일본 수도권 내 일부 의료기관에서 시작했다. ‘라인 헬스케어 주식회사’는 라인 주식회사와 M3 주식회사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합작회사다. 영상통화를 이용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온라인 진료 서비스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해외에 진출하려면 충분한 레퍼런스나 인증이 필요하다”라며 “행정규제와 이익집단의 압박을 뚫고 이를 쟁취해 (해외로) 나갈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초기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는 유효시장 확보와 규제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정희 벤처혁신연구소 부소장은 “우리나라 의료·헬스케어 기업의 기술력이 높다”라며 “규제가 완화된다면 수출이나 세계 시장 진출이 더 원활해질 것”이라고 기대를 비치기도 했다.
다만 한시적이고 일시적인 규제 샌드박스가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산의료재단 소속 연구원은 “결국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은 합법-불법을 가르는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사업을 꾸려나가야 하는 리스크가 있다”라며 “한시적이고 일시적인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로 이 리스크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도 “본격 사업화에 나서려 해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규제나 수가 등이 엮여 있어 총체적 난국”이라며 “정부 차원의 TF를 꾸려서라도 관련 규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