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관부연락선' 윤심덕 역 맡은 김히어라 인터뷰
성악가 윤심덕과 전도유망한 극작가 김우진의 현해탄 정사(情死)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실제로 두 사람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극 '관부연락선'(연출 이기쁨)에서 윤심덕 역을 맡은 김히어라는 윤심덕을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세웠다.
"2년 전 유럽여행에 갔을 때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에 오른 적이 있어요. 전 세계에서 온 예술가들이 모여서 비로소 인정받고, 하고 싶었던 꿈을 펼치잖아요. 윤심덕을 떠올리니 그곳이 그려졌어요. 그 사이에 윤심덕이 있을 거 같아요."
김히어라는 윤심덕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윤심덕을 소재로 한 자료들을 거의 다 봤다고 했다. '사의 찬미'를 리메이크한 가수들의 노래도 하나하나 들어봤다. 윤심덕이 살던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삶까지도 확인했다. 그렇게 극 중 '사의 찬미'를 어떻게 부를지에 대한 방향성을 찾아갔다.
"윤심덕의 노래를 부르면 구슬프면서도 담백해요. 기술적으로 화려한 것보다 음계를 딱 짚고 자신의 감정으로 노래하죠. 저도 가사를 곱씹으면서 불러야겠다고 판단했어요."
죽음을 찬미했던 그 노래엔 '생애 의지'가 담겼을 거라 김히어라는 해석했다. "무기력한 사람보다 삶의 의지가 많은 사람일수록 상처를 많이 받잖아요. 윤심덕은 시대적 한계 속에서 신여성으로 살았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아요. 보이지 않는 사막까지 갔지만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았던 거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을 달리고 달려서 끝내 '죽어야 끝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을까요?"
김히어라는 '관부연락선'에서 창법의 변화까지 꾀했다. 그간 뮤지컬 무대에서 해왔던 노래 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노래를 잘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초반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노래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니까요. 연출님께 물어보니 '히어라 심덕'은 너무 노래하려 하지 말고, 감정을 중심으로 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죠. 연기도 너무 들뜨거나 너무 가라앉지 않게 하려고 해요. 작가님은 첫 리딩 후 문자로 '많이 울었다'고 보내주셨어요. 저를 믿어보려고요."
김히어라는 "윤심덕에 200% 몰입돼 있다"고 했다. 대사대사마다 울컥할 때가 많다. '사의 찬미'를 부를 땐 그 감정이 갑자기 몰아치기도 한다. 죽음을 선택했지만, 살아남아 배 안에 홀로 있을 땐 우진이를 떠올린다. 화려한 삶이 힘들어서 죽음을 택했는데, 아무것도 없이 버려진 것만 같은 윤심덕의 상황이 구구절절 와닿고 있었다.
"많은 배우, 예술가들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게 윤심덕이라는 인물에 담겨 있어요. 제가 하는 대사를 들으며 홍석주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울컥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윤심덕과 '사의 찬미'는 드라마·영화·공연 등에서 소재로 많이 쓰여왔다. '관부연락선'에서 보여주는 윤심덕은 똑부러지는 신여성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새침하면서도 발랄함이 돋보인다. 그동안 '멋있고 강한' 여성의 역할을 해왔던 김히어라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개구쟁이같은 제 원래 모습을 온전히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아요."
김히어라는 '관부연락선'의 관전 포인트로 '표정'을 꼽았다. "윤심덕, 홍석주, 급사소년은 서로 얘기하는 순간 말고 철저히 혼자 남겨졌을 때 진짜 표정이 나와요. 저희는 마음과 다른 말이 나올 때가 많기 때문이죠. 얘기하고 돌아섰을 때 표정을 주목해주세요. 더 재밌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