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값싼 디젤과 LPG에 수요 쏠려…엔진기술 발달이 큰 차 거부감 덜어내
자동차 시장의 유행은 경제 상황과 생활 방식, 소비성향 변화 등이 결정한다. 여기에 정부 정책도 한몫을 차지한다.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상황은 1990년대 말 본격화했다. 세기말의 분위기 속에서 ‘세단’ 일색이었던 자동차 시장에 SUV와 미니밴 등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때다.
SUV는 브랜드마다 하나, 많아야 두 차종 수준이었다. 요즘이야 전체 신차 판매 가운데 절반이 SUV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은 ‘틈새(Niche) 모델’에 불과했다.
2000년대 들어 SUV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지속했던 ‘고유가’ 때문이다. 요즘에는 경유가 휘발유의 85% 수준이지만 당시 1ℓ당 디젤 단가는 휘발유의 절반에 불과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휘발유 부담에서 탈출할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SUV 선택'이었다.
결국 ‘디젤=SUV’라는 등식이 등장했고 소비자들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유지비가 저렴한 SUV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7인승 미니밴 역시 고유가가 만들어낸 유행이었다. LPG 엔진은 7인승 이상 다인승 모델에만 허락됐다. 2000년대 초, 현대차와 기아ㆍ대우차가 ‘7인승 LPG 미니밴’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참여정부’ 시절이었던 2004년, 주요 공공기관이 주5일제를 시작하면서 자동차 시장 역시 세단 일색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값싼 유지비 덕에 SUV와 미니밴 등 덩치 큰 차의 인기가 본격화됐다.
SUV와 미니밴이 증가하면서 우리는 덩치 큰 차에 대한 부담감도 덜어내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 큰 차를 선호하기 시작한 이런 흐름은 더욱 커졌다.
배기량 1cc당 180~220원인 연간 자동차 세금은 30여 년째 그대로다. 그 때문에 대배기량에 대한 부담감이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더 큰 차와 더 큰 배기량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소득수준도 높아졌다.
이 무렵 엔진 기술도 발달했다. 작은 배기량으로 큰 힘을 낼 수 있는 기술이 속속 등장하면서 제조사들은 차종별로 배기량을 낮추기 시작했다. 이른바 '다운사이징' 엔진이다.
중형 세단에 1300cc급 엔진을 장착한 모델이 등장하는 한편, 덩치 큰 SUV에도 1600cc급 디젤 엔진을 얹기도 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등장도 큰 차에 대한 거부감을 성큼 밀어냈다. 기름값 걱정 없이 고급 준대형 세단을 탈 수 있다는 것은 ‘업그레이드 소비’를 부추겼다.
다양한 첨단장비가 속속 자동차 안에 담기면서 '기술 과잉'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갖가지 첨단 기능을 무리하게 자동차에 접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수동 조절식 전조등을 시작으로 갖가지 loT 기능은 여전히 일반 소비자의 활용도가 낮은 편이다. 동시에 자동차 판매단가 상승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들 역시 한때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같은 맥락으로 최근 자동차를 이용한 ‘차박 캠핑’ 도 스쳐 가는 유행일 뿐이다. 큰 차를 선호하는 시대적 배경으로써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동차 산업 전반의 흐름은 결국 정부 주도의 유가 정책과 보유 단계의 세제 등이 주도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