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잇따른다. 옥중에 있는 한국 최대 기업 삼성의 총수를 석방해 현재 직면한 경제위기와 코로나19 백신 수급의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다.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16일 경제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경제계 의견을 모아 이 부회장 사면을 공식 건의했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 이례적으로 종교계도 나섰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25개 교구본사 주지들이 이 부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2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돼 1년 3개월째 수감 중이다. 사면론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을 놓고 벌이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격화하면서 한국 대표산업이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반도체를 국가안보의 핵심으로 삼아 삼성에 대규모 투자를 요구했다. 미·중 간의 틈새에서 살아남고 반도체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그런데 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할 삼성 총수가 옥중에 갇혀 경영의 손발이 묶여 있다.
또 지금 백신을 제때 구하지 못해 접종이 지연되고 코로나19 극복에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에 대한 기대다. 그가 글로벌 정치·경제계 인맥들과 구축한 두터운 네트워크는 여러 차례 조명된 바 있다. 이 부회장에게 기회를 준다면 백신 선진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물량 부족으로 백신 조달이 어려운 문제를 타개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삼성의 반도체를 지렛대로 백신을 확보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물론 엄정한 법 집행에 재벌 총수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고, 형평성 논란 또한 불가피하다. 반대 여론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부회장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박형준 부산시장의 청와대 오찬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이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국민 공감대를 고려하고 국민 통합에 도움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면에 10명 중 7명꼴로 찬성한다는 의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 통합 차원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결국 사면권을 행사할 대통령의 결단에 달린 사안이다. 정치적·법률적 부담이 크겠지만, 국익에 도움되는 판단이 절실하다. 국민들의 거부감도 많지 않다. 당장 사면이 어렵다면, 현실적으로 가석방도 대안이다. 형기의 절반을 채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대통령의 전향적 결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