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뉴딜 예산안 중 공정전환 지원 10%↓…산업전환 협약 주장도
그린뉴딜에 '딜(Dealㆍ거래)'이 없다. 저탄소ㆍ친환경 성장만을 주문할 뿐 기존 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배려는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주기만 하고 받는 행위가 없다면 거래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진단에 따른 처방으로 제시되는 개념이 '공정전환'이다.
공정전환은 1950년대 석탄ㆍ철강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 데서 비롯된 개념이다.
한국은 이미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대량 실업을 경험한 바 있다. 1980년대 후반 석탄산업은 저유가 시대가 열리고 원자력발전 비중이 커지면서 쇠퇴했다. 문제는 그 과정이 급격하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전국 탄광은 1989년 355개에서 5년 만에 52개로 줄었고 3만 명이 넘는 광부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현 정부는 기존 그린뉴딜 구상에 공정전환 개념을 반영했다. 지난해 10월 '지역균형발전 뉴딜'을 한국판 뉴딜의 새로운 축으로 추가한 것이다.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느 지역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그러나 관련 예산의 비중은 크지 않다. 경희대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책임연구원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에 따르면 2020~2025년 그린뉴딜 예산안에서 공정전환 지원 예산은 10% 이내로 추정된다.
그린뉴딜 예산 42조7000억 원 중 공정전환 지원 예산은 9조2000억 원으로 21.5%를 차지한다. 다만 '신재생에너지 확산 기반 구축'에 투입되는 예산도 포함돼 있어 이를 제외하면 10% 이내로 짐작된다.
현재 양상은 '딜' 없는 그린뉴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탄소ㆍ친환경 사업 활성화에만 집중할 뿐 그에 따른 반대급부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의 정부 정책으로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을 포괄하지 못한다"며 "그린뉴딜이라고 하면 '딜'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기업의 성장을 위해 녹색전환을 지원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전환 사례로는 유럽연합(EU)을 참고할 수 있다. EU는 모든 구성원이 저탄소 사회로 전환하는 데 동참할 수 있도록 '공정전환 메커니즘(JTM)'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433억 유로의 공적 재원을 종잣돈으로 올해부터 2027년까지 최소 1500억 유로(약 204조 원)가 조성될 전망이다.
오형나 교수는 "석탄 광산이 많고 발전소가 많은 폴란드 같은 지역은 (산업 전환에 따른) 위기가 크게 닥칠 가능성이 크다"며 "EU 예산을 보면 폴란드에 가장 많이 배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EU 집행위원회는 급격하게 전환될 업종으로 △석탄 △천연석유 △천연가스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기술교육이 필요한 업종으로는 △석유화학 △비철금속 △1차 금속 △자동차 등을 꼽았다.
이승윤 교수는 "정부는 기업을 지원할 테니 기업은 대신 실업을 겪게 될 노동자에게 어떤 새로운 교육을 제공하고 보상할지 딜을 할 패키지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그린뉴딜에 대한 정부 대책에는 어차피 하려고 추진 중이었던 '전국민고용보험'만 한 줄 들어가 있다"고 꼬집었다.
오형나 교수는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전문가 FGI(집단 심층 면접)를 통해 2025년까지의 그린뉴딜 예산(본예산 기준·73조4000억 원) 중 18.6%인 13조7000억 원을 공정전환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산업 전환으로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한 만큼 노동계도 대안을 내놓고 있다. 산업전환 협약을 맺고 기업의 미래와 노동자 고용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은 최근 산업 전환 과정에서 정부와 경제계를 상대로 개입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산업전환 협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노동자의 고용뿐만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기술 발전과 기후 위기가 촉진하고 있는 산업 전환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산업 전환 대응 계획 수립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 "산업 전환과 산업 융합ㆍ복합에 따른 사업 재편과 투자가 고용 불안을 일으키거나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신기술 도입에 따른 직무 변화에 노동자가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ㆍ훈련 시스템을 구축해 고용 안정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해 관계자들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머리를 맞대야 더 정교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고용 정책은 특정 업종이나 지역에 큰 고용위기가 왔을 때 한시적으로 실업에 대응하는 정책이지 구조조정 전반을 보완하는 정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관여하는 정부뿐만 아니라 노사가 일자리가 얼마나 생기고 사라질지, 새로 개편되는 업종으로 소화를 못 한다면 어떤 업종으로 기존 산업 노동자들을 보낼지 등을 사회적 대화나 당사자 간 협의의 틀로 풀어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