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당국의 규제 움직임에 대표적인 가상화폐(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시총이 반토막 나는 등 주요 가상화폐가 모두 폭락하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열흘 동안 40%의 시총이 빠진 뒤 '빙하기'가 찾아왔던 '2018년 폭락 사태'를 떠올리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24일 오전 국내 거래소에서는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해 4200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현재 1비트코인은 4240만 원이다. 24시간 전보다 10.69% 내렸다. 빗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오전 한때 380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4000만 원대를 회복했다.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이 시각 개당 4240만4000원이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화폐)에 속하는 시가총액 2위 가상화폐 이더리움은 빗썸에서 24시간 전보다 13.15% 내린 255만1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업비트에서는 개당 254만3000원이다. 같은 시각 도지코인은 빗썸에서 24시간 전보다 16.49% 내린 360.5원이다. 업비트(361원)에서도 비슷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규제에 나서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중국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는 21일 류허 부총리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비트코인 채굴과 거래를 타격하겠다"며 금융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더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 재무부도 지난 20일 가상화폐가 조세 회피 등 불법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며 1만 달러(약 1110만 원) 이상 거래하는 기업은 반드시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했다.
가상화폐의 폭락 흐름은 시가총액의 감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거래소에 상장한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이 최근 2주 사이 45% 증발한 것이다. 2018년 초에도 열흘 사이 시가총액이 40% 넘게 사라졌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의 폭락세를 가늠케 한다.
23일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업비트의 자체 시장지수(UBMI, 2017년 10월 1일=1000)는 24일 오전 11시 기준 7684.26을 기록했다. 이는 이달 1일(12231.69)과 비교하면 37.1% 내린 수치다. 특히 최고치를 기록했던 이달 9일(13972.08)과 비교하면 2주 만에 45% 하락했다.
UBMI는 업비트 원화 거래 시장에 상장한 모든 가상화폐를 대상으로 산출하며, 모든 가상화폐의 시가총액 변동과 시장 움직임을 지표화해 파악할 수 있다. 즉, 업비트 원화 시장에 상장된 전체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이 이달 들어 45% 증발했다는 의미다.
알트코인들도 시가총액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24일 오전 11시 기준 업비트의 알트코인지수(UBAI)는 5664.43이다. 이달 1일(8672.97)보다 34.7% 내렸고, 역대 최고였던 이달 11일(11239.64)과 견주면 49.6% 급락했다. 알트코인 시가총액도 불과 열흘 사이 50%가량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감소세는 코인 투자자들을 '공황'에 빠트린 2018년 초와 비슷하다. 2017년 10월 지수 편제 이후 UBMI는 이듬해 1월 7일 6843.89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열흘 만인 1월 17일(3709.76) 4000선이 무너지며 시가총액이 45.8% 사라졌다. 정확히 두 달 뒤인 3월 17일에는 1888.82까지 내렸다. 당시 시가총액은 1월 7일을 기준으로 하면 두 달여 만에 72.4% 증발했다. 이후 가상화폐는 오랜 '빙하기'가 찾아왔다.
2018년 폭락장을 경험했던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2018년 당시 '큰 손'들이 알트코인 급등락을 유도해 개미 투자자에게 폭탄을 넘기며 탈출한 뒤 시장 자체가 붕괴했던 현상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2018년의 악몽이 재현된다면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은 불가피하다. 2018년 당시 비트코인은 고점인 2888만5000원에서 연말에는 356만2000원으로 87.7% 폭락했다. 알트코인들은 그보다도 더 심하게 무너져 대부분 고점 대비 97~98%의 손실을 기록했다.
전체 가상화폐에서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비트코인 도미넌스'가 올해 초 70%에서 최근 40% 부근까지 떨어진 점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해석된다. 2018년 당시 비트코인 점유율이 33%대로 추락한 뒤 본격적인 폭락장이 이어져서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 도미넌스는 18일 39.94%로 떨어진 후 24일 기준 46.54%를 기록하고 있다. 비트코인 점유율의 하락은 역으로 변동성이 심한 알트코인 투자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JP모건은 지난 7일 "자산가치를 검증하기 어려운 알트코인에 투자자가 몰리는 건 투기 수요 때문"이라며 "이는 지난 2017년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했다가 얼마 뒤 거품이 꺼지면서 가격이 급락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평가한 보고서를 냈다. 최근 데이터트랙의 공동 설립자인 니콜라스 콜라스도 비트코인의 점유율이 40%로 내려가면 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화폐 가격이 빠르게 따르게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8년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의 급등 이후로 폭락이 나타났다는 점도 위험 요소로 꼽힌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과 글로벌 비트코인의 시세 차이를 의미한다. 김치 프리미엄은 일부 차익 거래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국내 가상화폐거래소에서 코인을 사들이려는 수요가 비교적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치 프리미엄은 가상화폐 시장 이상 징후를 측정하는 지표로 활용되곤 한다. 김치 프리미엄이 높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상화폐 시장을 유달리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해외 가상화폐 시장보다 '거품'이 껴 있다고도 분석된다. 실제로 2018년 초에는 김치 프리미엄이 50~60%까지 올랐다가 한 달 만에 0%로 무너진 전례가 있다. 한편, 최근 20%까지도 벌어졌던 비트코인의 김치 프리미엄은 24일 오후 기준 6.9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