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전반 선택기회 부족도 원인
채용절차 공정성 매몰된 것도 문제
대한민국 청년에게 공무원 시험은 익숙한 선택지다.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고, 2명 중 1명은 이 길을 기웃거린다.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사기업 채용보다 평가 기준이 명확하고 과정도 투명하다는 판단에서다. 늘어난 공시생에 노량진은 과거 재수학원 본거지에서 공무원 고시학원촌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얼어붙은 채용 시장에 ‘공시생’ 다시 늘어 = 4월 치러진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에 약 20만 명이 몰렸다. 늘어난 채용 인원 수에 평균 경쟁률(35:1)은 전년(37.2:1) 대비 소폭 줄었지만, 총지원자 수는 늘어났다. 지난해보다 경쟁률이 오른 직렬도 많았다. 출입국관리직인 경우, 지난해 경쟁률은 47.2대 1에서 올해 144.5대 1로 치솟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얼어붙은 채용시장은 ‘공시 열풍’에 다시 불을 붙였다. 통계청의 ‘2020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월 청년층(15~29세) 취업시험 준비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9만 명(12.6%) 늘어난 80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이 사상 최대로 늘어난 것.
청년 수험생이 몰리면서 ‘국가공무원 7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의 지원자 평균 연령은 29.4세로 지난해 30세보다 낮아지기도 했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가장 많은 2만3960명으로 61.5%, 30대가 1만2159명으로 31.2%를 기록했다. 최근 주춤했던 공무원 응시자 수도 다시 반등세를 보이는 추세다.
채용 비리 등 사기업 채용 특혜 논란이 잇따른 가운데 한정된 시간과 자원이 있다면, 그나마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무원 시험을 택하겠다는 얘기다. 통계청은 졸업(중퇴 포함) 후 개인 사업이 아닌 임금 근로자로 첫 취업을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개월이 걸린다고 본다.
지방 국립대학교를 졸업한 이지연(가명ㆍ26) 씨는 “사기업인 경우, 주변에서 종종 낙하산으로 취업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수혜자가 나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경쟁에 밀린 것과 다름없지 않겠냐”며 “공무원 시험은 사기업보다 주관이 개입될 가능성이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취업 사이트 커리어가 구직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구직 활동을 하면서 채용 공정성을 의심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 74.1%가 ‘있다’고 답했다. 공정성을 의심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50.9%는 ‘특혜 채용이나 채용 비리 등의 뉴스 때문’을 이유로 꼽았다.
민간 시장에서 채용 불신이 커지자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가 이어졌다. 5월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불합격을 통보받은 구직자가 요청하는 경우 구인자는 14일 이내에 불합격 사유를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19·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치권의 무관심 등으로 동력을 잃고 폐기된 바 있다.
◇전문가 “공정은 채용방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 = 대학내일 20대 연구소는 공시 열풍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선택의 기회 자체가 부족해 기본적인 삶의 여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준비 과정이 쉽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평가 기준이 명확한 길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취업에서 공정성을 논의할 때만큼은 고용 구조의 불평등보다는 유독 공정한 채용 절차 문제에만 집중하는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시험인간’의 저자 장근영 씨는 ‘필기시험’에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사실 단 하루 만에 치러지는 공무원 시험은 가장 제한이 많은 평가도구”라며 “제한된 자원을 놓고, 너무 많은 사람이 경쟁한다.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고 절차의 공정성에만 집중하는 것은 현실의 불평등을 감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