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비키니 안 입겠다"…성적대상화 유니폼 거부 확산

입력 2021-07-28 15:2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스포츠계서 부는 여성 선수 유니폼 변화 바람
역대 가장 여성 선수 참여율 높은 올림픽
IOC "성적대상화 장면, 올림픽 중계 안될 것"

▲25일 독일 기계체조 선수 파울린 쉬퍼가 팔 다리를 모두 가린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은 채 기계체조 마루 운동 예선전에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 AP/뉴시스)

2020 도쿄 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남녀 참가자 비율이 가장 비슷한 올림픽이다. 다양성과 성 평등을 추구하는 변화의 기류 속에 여성 선수들 스스로도 변화하고 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한 유니폼에 반기를 드는 선수들이 늘고 있는 것.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은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전신을 덮는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었다. 보통 기계체조 선수들은 팔과 다리가 모두 드러나는 원피스 수영복 형태의 '레오타드'를 입는다. 국제체조연맹에 정해진 규정은 아니나 관행적으로 입어왔다.

독일 선수들이 레오타드 유니폼을 선택한 건 선수들을 향한 여성 선수의 성적 대상화에 반기를 들기 위해서다. 지난 4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대회 당시, 독일 체조 연맹은 체조의 성적 대상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전신 유니폼을 소개했다.

▲23일 독일 기계체조 선수 파울린 쉬퍼가 자신의 SNS에 유니폼 사진을 공개하며 "우리 팀 새 옷, 어때요?"라고 물었다. (출처=파울러 쉬퍼 인스타그램 캡처)

독일의 기계체조 국가대표 사라 보시는 BBC에 "체조 동작을 할 때 레오타드가 내 몸을 전부 덮지 않을 때도 있고 미끄러질 때도 있다"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상당히 안심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독일의 선수 엘리자베스 세이츠는 "유니폼을 통해 우리는 여성 모두가 스스로 무엇을 입을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불가리아에서 열린 유럽 비치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노르웨이 선수들이 성적대상화에 반대한다며 규정에 따른 비키니 대신 반바지를 입어 화제가 됐다. (출처=노르웨이 핸드볼협회SNS)

올림픽뿐만이 아니다. 지난 18일 불가리아에서 열린 유럽 비치 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노르웨이 국가대표 선수들이 성적 대상화에 반대한다며 규정에 따른 비키니 대신 반바지를 입었다.

비치 핸드볼은 모래 위에서 열리는 핸드볼 경기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비치발리볼과 달리 아직 올림픽 공식 종목은 아니다.

유럽핸드볼연맹(EHF)의 규정에 따르면 비치 핸드볼 선수들은 반드시 비키니를 입고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 상의는 양팔 전체가 드러나는 딱 붙는 스포츠 브라 이어야 하며 하의는 길이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 남자 선수들은 반바지를 입어도 된다.

▲2019년 도하에서 열린 세계 비치게임 여자 비치핸드볼 헝가리와 덴마크의 결승전 (신화/뉴시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대회 개막 전 노르웨이 핸드볼협회는 유럽연맹에 선수들이 반바지를 입고 뛸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규정상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선수들은 반바지 유니폼을 고집했고, 연맹은 이에 대해 선수 한 명당 한 경기에 50유로(약 6만7000 원)의 총 1500유로(약 203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연맹의 벌금 부과 소식에 각계각층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미국 팝가수 핑크는 선수들 대신 자신이 벌금을 내겠다고 나섰다. 핑크는 25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남성처럼 반바지를 입지 못하게 한 규정에 항의한 노르웨이 여성 비치 핸드볼팀이 매우 자랑스럽다"며 "잘했어. 아가씨들. 너희들을 위해 벌금을 기꺼이 내겠어"라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연맹은 "벌금을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들의 평등을 지지하는 주요 국제 스포츠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오사카 나오미가 최종 성화 점화 주자로 나섰다. 그가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된 데에는 이번 올림픽이 추구하는 다양성이 고려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AP/뉴시스)

유니폼을 비롯해 여성 스포츠 선수를 향한 성적 대상화는 그동안 스포츠계가 가진 고질적 문제 중 하나였다. 이에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OBS(Olympic Broadcasting Services)의 야니스 이그재르커스 대표이사는 여성 선수를 성적 대상화한 장면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야니스 대표이사는 지난 27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들 특정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하는 등의 장면이 예전에는 가끔 나갔지만, 이번 대회에는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IOC는 경기 중계 가이드라인에 '성적으로 평등하고, 선수 외모나 유니폼, 신체 부위를 불필요하게 강조하지 말 것’이라는 규정도 마련했다.

IOC의 이러한 노력은 성 평등과 다양성에 방점을 둔 2020 도쿄 올림픽과도 연결된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올림픽이 열릴 당시 남성만 참가가 가능했다. 여성이 올림픽에 참가한 건 1900년 파리올림픽 이후인데 그동안에도 여성의 참가율은 여전히 낮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참가자는 남성이 6197명, 여성이 2194명으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변화의 바람이 분 이번 도쿄 올림픽은 여성의 출전 비율이 역대 최고(48.5%)를 기록했다. 개막식에서도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남녀 기수가 함께 입장하도록 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