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파운드리 맹추격… 중장기적 낙관 힘들어
삼성전자가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 반도체 회사에 올랐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매출이 인텔을 넘어선 건 2018년 3분기 이후 약 3년 만이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며 당분간 삼성전자 위상이 견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인텔이 파운드리(칩 위탁생산)를 중심으로 과감한 투자에 나서면서 언제든지 순위가 뒤바뀔 수 있어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기 매출에서 인텔을 제쳤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삼성전자의 2분기 반도체 부문 매출은 197억 달러(약 22조7400억 원)로 인텔의 전체 매출액 196억 달러(약 22조5500억 원)보다 2000억 원 가까이 많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이 1위 자리에 오른 것은 메모리 반도체 슈퍼 호황기였던 2017년과 2018년 이후 처음이다. 이때를 제외하고는 인텔이 반도체 매출 정상 자리를 지켜왔다.
삼성전자 반도체를 1등으로 이끈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펜트업(억눌린)소비와 이로 인해 꾸준히 오르는 반도체 가격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인들이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가전 수요가 폭등했고 가전제품에 탑재되는 반도체 수요도 늘었다. 소비자들의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기업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크게 늘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도 꾸준히 상승세다.
지난달 D램 PC향 범용제품(DDR4 8Gb 1Gx8 2133㎒) 고정거래가격은 전분기 대비 7.89% 증가한 4.10달러를 기록했다. D램 고정가는 2019년 4월 이후 2년여 만에 4달러대에 진입했다.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 고정거래가격도 지난 분기보다 5.48% 오른 4.81달러였다. 2018년 9월 이후 약 3년 만에 최고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메모리 호황이 이어지고 있고,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 능력 면에서 인텔보다 우위다.
다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삼성전자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삼성의 주력 사업인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내려가면 실적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인텔은 지난 3월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한 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삼성전자를 맹추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초대형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예고한 것이 대표 사례다.
인텔의 기술 로드맵도 공격적이다. 2024년에는 2나노 수준인 '20A'를 생산하고, 이어 2025년에는 인텔18A를 양산할 계획이다. 18A는 1.8나노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3나노 공정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의 핵심 거래선인 네덜란드 ASML과 차세대 EUV(극자외선) 장비인 ‘하이엔에이(High NA) EUV’를 가장 먼저 도입할 계획이다. 퀄컴과 아마존이란 대형 고객도 확보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투자 시계는 느리게 흐른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투자 계획 발표는 하염없이 미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말 기준 200조 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오너 공백이 결단을 머뭇거리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에는 책임과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총수 결단 없이는 추진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 왕좌 쟁탈전의 핵심 키워드는 '투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WSJ은 어느 회사가 더 많은 투자를 하느냐가 향후 1위 자리를 판가름할 것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