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시 28회 동기 나란히 금융수장, 정책·감독당국 협업 메시지
코로나19 장기화로 소상공인, 가계 재정 위기가 커진 만큼 정책당국, 감독당국 간 호흡이 여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고시 동기가 각각 금융위원장, 금감원장을 맡게 된 것도 이 같은 취지로 해석된다.
“경제 회복 위한 금융지원 추진 기재부·한은과도 긴밀히 소통”
고 내정자는 공식 소감문을 통해 “코로나19 위기의 완전한 극복, 실물부문·민생경제의 빠르고 강한 회복을 위한 금융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가계부채, 자산가격 변동 등 경제·금융 위험요인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국회,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 한국은행, 금감원 등과도 더욱 긴밀하게 소통·협력해 나가겠다”고 해 부처 간 협업도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다시금 강조했다.
또한 가상자산 제도화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5월 금융위가 가상자산 주무부처로 지정된 이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시장 관리에 돌입했지만 체계는 여전히 잡혀있지 않은 상태다. 현재 국회의원 주도로 가상자산을 다룬 입법 발의안만 4건에 이른 것만 봐도 가상자산 시장 정립이 필요한 시기다.
◇전문가들 시장에 맞는 유연함 기대 = 정은보 금감원장 내정자는 조직 관련 현안을 다뤄야 한다. 무엇보다 이달 20일 선고를 앞둔 우리은행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중징계 제재 소송 결과가 첫 주요 업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승소 시 관련 제재를 어떻게 진행할지, 패소 시 항소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장 공석에서 진행된 사안인 만큼 소송 결과에 따른 금감원 입장 정리를 사전적으로 세워야 할 시점이다.
우리은행 DLF 제재 첫 주요업무, 금융위원장과 이견 조율 기대도
정 내정자는 취임 소감문을 통해 “법과 원칙에 기반한 금융감독에 주력하겠다”며 “제재 등 사후적 감독과 함께 선제적 지도 등 사전적 감독을 조화롭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 수장들이 관료 출신인 만큼 실물 경제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메시지를 그대로 반영하기보다 시장 상황에 맞는 유연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K-양극화’로 불리는 재정 양극화 현상이 문제”라며 “경제에 어려움이 없는 상단이 아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에 내정된 금융수장들의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이 동시에 감지되는 ‘한 지붕 두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두 내정자 모두 정치적 색채가 있다기보다 합리적으로 업무 수행을 해 온 분들로 알고 있다”며 “다만 시장 상황에 맞지 않은 정부 방침이 정해졌을 때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시장 흐름에 맞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석동-권혁세’ 이후 10년 만의 동기 =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와 정은보 금감원장 내정자가 행시 28회 동기라는 점도 화제다. 지난 2011년부터 임기를 같이 시작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권혁세 전 금감원장(행시 23회) 이후 10년 만에 동기가 뭉친 것이다. 행시 동기라는 공통점이 있는 만큼 고 내정자와 정 내정자의 소통은 원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전 금감원장이 이견이 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일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 김석동 전 위원장, 권혁세 전 원장 시절에 두 기관 간 관계는 좋았었다”며 “다만 당시에 두 분 성향이 모두 강해서 이슈에 관해 ‘강 대 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감독체계 개편 등 금융위와 금감원의 조직 운영안이 다시 대두되는 만큼 이 부분에서 고 내정자와 정 내정자가 뜻을 같이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의 행시 기수 차이가 컸을 때는 ‘갑과 을’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텐데 이번엔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관계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태기 교수는 “서로 같은 배를 탄 것도 아니고 공무원 경험을 해 온 것도 다르기 때문에 행시 동기라고 해서 생각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