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국제공조수사 요청 등 게을리한 것 증명 필요"
허재호(79) 전 대주그룹 회장이 법무부를 상대로 검찰의 국제 수사공조 자료를 공개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2014년 허 전 회장은 하루 5억 원의 벌금을 탕감받는 이른바 '황제 노역'을 하다 사회적 비난을 받은 인물이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허 전 회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정보 비공개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허 전 회장은 2007년 5~11월 사실혼 관계로 지내던 A 씨 등 3명의 명의로 보유한 대한화재해상보험 주식 매각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5억여 원과 차명주식 배당금의 종합소득세 650여만 원을 탈세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로 기소됐다.
앞서 서울지방국세청은 2014년 허 전 회장이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판단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허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A 씨가 주식의 소유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A 씨의 소재 파악이 불가능하자 수사를 중단했다. 검찰은 2018년 11월 A 씨의 소재를 확인하고 수사를 재개해 이듬해 허 전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이 재판에서 허 전 회장 측은 공소시효 만료를 주장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는 조세포탈액이 5억 원이 넘으면 공소시효가 10년이다. 반면 검찰은 "허 전 회장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2015년 8월 3일부터 뉴질랜드에 머물러 공소시효가 정지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허 전 회장은 "수사기관이 자신에 대한 소환통지나 인도 요청, 국제공조수사 요청 등을 게을리해 공소시효가 지난 것"이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법무부가 정보 비공개 처분을 한 뒤 이의신청 마저 기각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뉴질랜드에 국제 수사 공조 요청 등을 한 적이 있거나 없다는 서류 등의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청했다.
법원은 해당 자료를 비공개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 자료는 법무부가 2020년 2월 외교부에 송부를 의뢰한 문서로 뉴질랜드에 대한 형사사법공조 요청서 송부 의뢰서와 법적 지원 요청서, 형사재판부가 작성한 형사사법공조 요청서로 구성됐다.
재판부는 "해당 정보가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에 해당하는 것은 명백하다"면서도 "형사재판의 공소장 부본과 소송절차에 관한 서류를 원고에게 해외 송달하기 위해 법원의 요청에 따라 법무부가 뉴질랜드에 송달을 요청한 것에 불과해 내용 자체가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형사사법 공조와 관련된 정보라는 이유만으로 신중한 법익 간 형량을 거치지 않고 무조건 비공개한다면 국민의 알 권리와 정보공개법의 취지가 몰각될 우려가 크다"며 "이미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에 대한 서류를 공개한 것만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훼손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허 전 회장은 또 정부가 뉴질랜드에 국제 범죄인 인도 요청이나 범죄인 송환 요청을 한 적이 있거나 없다는 서류 등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허 전 회장이 정보공개를 청구한 지난해 6월 26일까지 뉴질랜드에 범죄인 인도 요청이나 송환 요청을 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돼 정보 비공개 처분을 다툴 법률상 이익을 인정할 수 없다"며 청구를 각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