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는 공정지도] 사회 이슈 본질 삼켜버린 '공정 블랙홀'

입력 2021-08-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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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vs 불공정 대결에 매몰

공정과 불공정에만 매몰되는 사이 사회적으로 정작 논의해야 할 본질은 덮어버린 사례. 일명 ‘공정 블랙홀’이다. 이는 인천국제공항 사태뿐만이 아니다. 공정 블랙홀은 오랜 기간 지속돼 왔다. 공정 논란이 블랙홀처럼 이슈를 빨아들이는 사이 논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정원 확대 논의 뒤덮은 '의사 파업'

2020년 8월. 의사협회는 ‘독단적인 의료 4대악 철폐를 위한 대정부 요구사항’을 발표하며 파업을 강행했다. 이들의 요구 중 관심을 모았던 건 정원 확대였다. 의사들의 주장은 10년간 연 400명씩 정원을 늘리면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우려였지만, 사실상 이권을 누리기 위한 주장으로만 들렸다. 시민들도 이에 동의하지 못했고 여론은 의사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정부는 정원 확대 외에 국립 공공의대 설립안도 내놓았다. 폐교된 서남의대 정원 49명을 교육해 현재 지원자가 적은 감염내과 전문의와 역학조사관 등을 기른다는 게 골자다. 의사들이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정책이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의료계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 의사들의 파업은 큰 우려를 낳았다. 시간이 흐르자 정원 확대보다 공공의대 설립이 의대생과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을 더욱 화나게 했다.

핵심은 ‘공정’이었다. 공공의대 학생을 ‘시·도지사 추천제’로 뽑는다는 내용이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가 해명에 나섰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의사 정원 확대를 위한 논의는 완전히 뒤덮인 채 공정과 불공정 이슈만 남았다.

조국 자질 검증 없었던 '조국 사태'

“누군가의 입김으로 노력도 없이 원하는 걸 얻는 건 불편…그래서 조국사태에 사람이 더 분노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신 모 씨, 27, 공무원 시험준비생)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앞두고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이 일었다. 조 전 장관이 교수 시절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던 사실과 모순됐다. 이후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표현이 유행할 정도였다.

조국 사태는 이후 정시가 공정하냐, 수시가 공정하냐의 문제로 이어졌다. 시험 제도의 공정함을 두고 다투는 사이 소모적인 논쟁만 남았다.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서 충분한 능력을 갖췄는지, 법무부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는 따져보지도 못했다. 언론에선 조 전 장관 딸의 수시 입학 과정을 연일 보도했고 정부도 여론을 의식해 정시 확대를 약속한다는 기이한 결말만 낳았다.

청년들은 시험이나 전형이 공정했느냐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신 씨는 “공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상적이고 원론적으로 느껴져 회의적”이라며 “공무원 시험은 공정한 시험이라고 평가되지만 오해다. 돈 많아서 1타 강사 듣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어떤 사람의 마지막 기회가 노력도 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건 막아 주는 것”이라며 “시험의 공정만 따지다 보니 근본적으로 공무원과 공기업의 경쟁률을 부추기는 열악한 고용시장 문제는 덮이는 느낌을 받는다”고 밝혔다.

정치에 가려진 공정성 '남북단일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의 기대가 무르익던 2018년 1월, 남북 차관급 실무회담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출전이 결정됐다.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취지를 설명했지만, 결정 과정에서 대표팀 의견은 고려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새러 머리 감독은 “선수들의 조직력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유도선수인 이상현(가명) 씨는 그 당시를 지켜보며 “스포츠는 정치가 이용하기에 좋지만 우리는 정치가 아니라 인생이고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당시 선수 선발의 공정성 논쟁은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선수들은 4년을 준비했을 올림픽 개막 직전 남북단일팀이 결정돼 불공정하다는 반발이 더욱 컸다. 공정이슈의 블랙홀화로 올림픽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은 묻힌 채 남북단일팀은 본래 의도대로 비치지 못했다.

신광용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질적인 공정에 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작은 공정만을 얘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우리 사회에 어떤 기본적인 원리나 원칙이 바람직한 사회인가에 대한 논의보다 자기의 이해관계에 기초해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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