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실리 없어진 전쟁서 손뗀다는 의지로 강행
철수 과정서 민간인·미군 희생자 발생해 안팎서 비난
새 테러 위험도 커져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아프간에서 20년간의 우리 군 주둔이 끝났다”면서 “지난 17일간 미군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작전으로 12만 명이 넘는 미국과 동맹국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그들은 용기와 전문성, 의지를 갖고 해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31일 아프간 전쟁 공식 종료에 대한 대국민 연설을 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케네스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브리핑을 통해 미군의 C-17 수송기가 아프간 현지시간으로 30일 밤 11시 59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이륙했다고 밝혔다. 애초 미국 정부가 스스로 대피 시한으로 정한 31일보다 하루 앞당겨 철수를 완료한 것이다. 마지막 미군 수송기에는 카불 현지에서 미국의 대피작전을 총괄했던 크리스토퍼 도나휴 미국 육군 82공수사단장과 로스 윌슨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대리가 탑승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대피작전이 본격화한 14일 이후 총 12만3000명이 아프간을 탈출했다.
아프간전은 2001년 당시 아프간 정권을 쥐고 있던 탈레반이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인도 요구를 거부한 것이 계기가 됐다. 9.11테러 당시 아프간전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미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94%가 전쟁 개시를 지지할 정도였다. 미국은 침공 직후 탈레반을 몰아내고 나서 친미 성향 아프간 정부를 세웠고, 약 10년 만인 2011년 5월에는 빈라덴을 사살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 전쟁에도 내세울 만한 성과는 빈라덴 사살 정도고, 아프간에서의 민주주의 국가 건설은 결국 실패했다. 미국의 의도와 달리 아프간 정부는 무능과 부정부패로 일관돼 현지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못했고, 2015년 무렵부터는 탈레반이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하며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전쟁의 끝은 공허했고 잔인했다. BBC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아프간전으로 인한 희생자는 민간인과 반군 등을 포함해 약 24만 명에 달한다. 이중 미군과 동맹국 군대 희생자 수는 3586명에 이른다. 브라운대학 연구에 따르면 아프간전쟁 및 재건사업에 투입된 자금은 1조 달러(약 1159조 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2만 명 이상의 재향군인 연금과 치료 비용 등을 감안하면 전쟁 비용은 이미 수조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년간 4명의 대통령이 거쳐 간 전쟁에서 탈레반을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CNN은 “천문학적인 자금과 2000명이 넘는 미군을 희생한 전쟁은 20년 동안 부모 세대는 물론 아이도 죽였다”고 혹평했다.
탈레반이 미국의 예상보다 빨리 정권을 장악한 후 쫓기듯 철수하는 과정에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살폭탄 테러로 170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과 미군 희생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철군 작전과 관련해 사전에 아프간에 참전했던 영국과 프랑스 등과 사전에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는 동맹국의 불만, 미군 철수로 발생한 대규모 난민 문제 등으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시작된 전쟁이었으나 결국 아프간이 테러조직의 거점으로 재부상해 미국은 물론 동맹국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내 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미국 CBS뉴스와 유고브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지지한다고 응답했지만, 70%는 바이든 대통령의 ‘출구전략’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