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탈레반 새 내각 인정할 계획 없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재집권에 성공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새 정부 윤곽을 발표했다. 탈레반 내 파벌간 조정이 난항을 겪으면서 임시 총리 등 일부 각료만 발표됐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도 정부 내각 일부 명단을 공개했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가 임시 수반(총리)으로 지명됐다고 발표했다. 그간 정부 수반 후보로 거론됐던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부수반(부총리)에 이름을 올렸다.
수반에 오른 하산은 탈레반이 결성된 남부 칸다하르 출신으로 지난 20년간 탈레반의 최고 위원회인 레흐바리 슈라를 이끈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군사 업무보다는 종교 관련 분야에서 주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의 과거 통치기(1996∼2001년) 때는 외무부 장관과 부총리를 맡기도 했으며 유엔(UN) 제재 명단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내무장관에는 탈레반의 연계조직인 하카니 네트워크를 이끄는 사라주딘 하카니가 맡게 된다. 하카니는 테러 범죄와 관련해 미연방수사국(FBI)의 수배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탈레반에 테러 조직과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카니 내각 입성은 미국과 탈레반이 구성한 아프간 정부 간의 협력 가능성을 흔들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탈레반 창설자 무하마드 오마르의 아들인 물라 모하마드 야쿠브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오마르는 2001년 미국의 9.11테러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 인도 요청 거부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날 발표된 내각 구성은 '과도 정부' 형태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내각 구성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새 정부는 잠정적인 체제"라고 강조했다. 치안상의 문제가 있어 긴급한 임명이 필요한 직책 위주로 내각 구성을 발표했다는 설명이다.
탈레반은 지난 3일 정부 출범식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정이 연기됐다. 이에 대해 탈레반 내부 파벌의 갈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도 NDTV는 바라다르 측, 하카니 네트워크, 칸다하르 정파, 동부 지역 반독립 조직 등이 권력 투쟁을 벌였다고 전했다.
이날 탈레반 최고 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의 역할이나 세부 정부 체제 형태에 대해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아쿤드자다는 2016년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국기, 국가 등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은 이전 통치기(1996∼2001년) 때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를 국호로 사용했으며 지금도 탈레반은 이를 자신들의 정식 조직 이름으로 활용 중이다.
이날 무자히드 대변인은 내각의 다양성을 주장했지만, 이번 내각 발표에 여성은 없었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이번 내각 구성은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등용됐다"면서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의 새 정부와 이슬람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탈레반의 임시 내각 구성 발표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탈레반의 새 정부를 승인할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밝혔다. 사키 대변인은 "(탈레반 정부) 승인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면서 "탈레반이 어떤 조처를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미국을 포함한 세계가 주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