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세종대 대우교수, 정치학 전공)
일본에서는 집권당이 국회의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어 보통 집권당 총재가 무난히 총리로 지명된다. 그런데 당초 일본에서는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의 총재당선 가능성이 많이 거론됐지만, 기시다가 당선, 총리가 된 것이다. 기시다 신임 총리는 그동안 일본에서도 많이 화제가 되지 않았던 인물이다.
기시다총리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위안부 합의를 맺었을 때 한국에 온 당시 일본 외무상이다.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의 정치적 신조는 비둘기파에 속하니 온건파이다. 기시다 총리 자신도 온화한 인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너무 온화해서 무엇이 기시다 자신의 주장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 국민 사이에서 인기가 높지는 않다.
국민 여론으로는 고노 다로가 가장 인기가 높았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 고노와 연대한 이시바 시게루나 고이즈미 신지로도 국민적 인기가 높다. 그런데 국민적 인기가 높은 사람들의 연합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 고노 다로는 실수가 많았다. 화가 나서 한 발언이 있었고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들이 많았다. 그런 발언을 하는 고노를 TV에서 본 국민 중에는 고노가 총리의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번에 자민당 내에서 세대교체를 외치면서 90명정도의 새로운 국회의원들이 모여 ‘당풍일신의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모임은 당초 고노 다로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에 그 90명이 대거 투표했다면 고노는 총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임 주최로 고노의 의견을 듣는 간담회가 열렸는데 거기서 고노는 자민당 내의 정책모임, 그것을 부회라고 하는데, 부회를 경시하는 발언을 했다. 당의 부회에서 꽥꽥거리는 것보다 정부 내에 정책팀을 만드는 게 낫다고 말한 것이다. 자민당 내의 여러 정책부회에 소속하는 젊은 의원들이 이런 고노 다로의 발언 때문에 지지를 철회하고 기시다 지지로 선회했다. 기시다는 총재가 되면 자민당 내 부회를 중시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의원내각제이므로 자민당 내의 정책모임 의견이 중요한데 고노가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래서 고노는 결국 자민당 국회의원표를 모으는데 실패했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는 국회의원표 382표와 당원표 382표로 지러졌다. 그리고 당초 예상으로는 고노 다로가 당원표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전해졌다.
국회의원표에서 밀린 고노진영은 당원표를 70% 이상 모아야했는데 결과적으로 고노에 투표한 당원들도 약 40%에 그쳤다. 이유는 고노의 대중적 인기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트윗터의 팔로워가 230만명에 달하는 고노인데 상대를 잘 차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총리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 국민을 차단해도 되느냐는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고노는 자신이 총리가 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팔로워는 계속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많은 일본 국민이 고노는 총리가 되기에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고노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넷우익들이고 그들은 거의 극우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기시다가 한 표차이로 1위를 차지했고 고노가 2위, 다카이치가 3위가 됐다. 기시다와 고노가 맞붙은 결선투표는 국회의원표 382표와 당원표는 줄어든 47표로 실시되었고 기시다가 고노에게 87표 차이로 완승했다. 투표 하루 전 기시다 진영과 다카이치 진영이 결선 투표에서는 연합하겠다고 공식으로 발표했고 기시다-다카이치 연합이 고노를 압도한 것이다.
총재선거 후 기시다 총재는 새로운 자민당 집행부 인사를 단행했다. 그것은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아소 다로 전 부총리를 배려한 특색이 나타난 인사였다.
먼저 자민당의 실질적 책임자인 간사장에 아마리 아키라(甘利明)를 임명했다. 아마리는 아베-아소와 함께 3A라고 불리는 극우파의 실력자이고 이번 기시다 진영의 선거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아마리의 문제는 과거의 금전 스캔들로 장관직을 사퇴한 적이 있고 그 의혹이 지금도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민당으로서의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책임자인 정무조사회장에는 다카이치 사나에가 임명되었다. 기시다는 당에서 올라올 정책을 중시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기시다 내각은 극우성향인 다카이치가 만들 정책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다카이치의 배후는 이번에 그를 본격적으로 지지한 아베 전 총리가 있다. 그리고 일본 내 극우파들도 다카이치의 든든한 배후다.
기시다는 총재선거에 입후보한 고노, 다카이치,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3명에게 모두 중요한 역할을 준다고 했는데 고노는 자민당의 홍보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자민당의 홍보본부장이라는 자리는 외상, 방위상, 행정개혁상 등을 역임한 고노에게는 사실상 강등의 의미가 크다. 고노에게는 대단히 굴욕적인 인사인 것이다. 자민당 내에서도 고노가 아무리 패배했다고 해도 너무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노다 세이코는 기사다 내각의 소자화(少子化) 담당장관으로 임명돼 저출산 대책을 주도하게 됐다.
이달 4일 기시다는 일본 총리로 취임하면서 새 내각을 발표했다. 장관 20명 중 13명은 처음으로 장관직을 맡는 사람들이다. 결론적으로 정부보다 자민당 측의 힘이 세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아베-아소-아마리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중요 포스트에는 역시 아베-아소의 그림자가 보인다. 관방장관에는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가 임명되었는데 다카이치와 같은 극우파다. 그는 2007년 미국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죄 촉구안이 통과되었을 때 다카이치 등과 함께 미국의 각 유력 신문지에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매춘부가 된 사람들”이라는 광고를 낸 사람이다. 기시다는 이렇게 아베와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을 관방장관에 임명했다. 부총리 겸 재무상이었던 아소는 자민당 부총재로 임명되었지만 그의 여동생 남편인 스즈키 순이치(鈴木俊一)가 재무상이 됐다. 외상은 모테기 외상이 유임되었고 방위상도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 기시 노부오(岸信夫)가 유임되었다.
이번의 자민당 집행부와 내각 인사에는 기시다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시다는 아베-아소의 이야기를 너무 잘 들어서 기시다의 얼굴을 하고 있는 아베-아소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일관계도 좋아질 기미가 없다. 기시다는 2019년 12월 문희상 국회의장(당시)이 강제징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희상안을 제안하려고 일본을 찾았을 때 “한국과 어떤 약속을 해도 위안부 합의처럼 뒤집어질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일본은 위안부합의에 대해 약속한 것은 모두 이행했다. 공은 한국 측에 있다”고 언급하면서 한국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표출했다. 이런 기시다의 생각과 배후에 있는 아베-아소를 생각할 때 한일관계 개선은 현시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