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협력업체, 가맹본부와 가맹점에 갑질 프레임을 덧씌우면 각각 다른 기업이지만 갑질의 유형은 천편일률적이다.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가맹사업법까지 갑질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법안은 수차례 개정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국감이 시작되면 늘 대기업과 가맹본부의 갑질은 되풀이된다. 법안에 허점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갑질 대상을 찾기 위해 억지로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일까.
통계는 가장 합리적인 근거이지만 통계의 모집단과 조건 등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다른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통계의 오류이자 허점이 존재하고 통계를 활용하는 이가 의도한대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5일 국감에서 제기된 편의점의 갑질 논란 역시 통계의 허점을 보여준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빅4 편의점 가맹본부 매출액 및 가맹점 매출액 현황’에서 지난해 빅4 편의점 가맹본부의 매출은 증가하고 가맹점 평균 매출은 감소했다는 분석은 수치만 놓고 보면 타당한 지적으로 보인다. 윤 의원은 본부와 가맹점 매출이 디커플링 현상을 보인 원인으로 과도한 점포수 경쟁을 지적했다. 실제로 4개 편의점이 지난해 새롭게 오픈한 가맹점은 1만3000개에 육박한다.
편의점은 다른 가맹사업 모델과 차이가 있다. 외식업이나 서비스업 프랜차이즈 대부분은 가맹점주가 인테리어비용, 점포 보증금 등을 부담하지만 편의점은 예외다. 편의점은 점포 오픈 때마다 본부와 가맹점이 공동으로 투자한다. 투자 비중은 점포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맹점주가 최소 비용으로 오픈할 경우 보증금부터 인테리어비용까지 전액 가맹본부가 부담하기도 한다. 점주는 초도물품 비용만으로 매장을 오픈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편의점의 수익 배분 구조도 다른 프랜차이즈와 다르다. 가맹본부의 투자금이 많을수록 가맹본부에 돌아가는 몫이 커진다. 대부분의 편의점은 가맹점을 보호하기 위해 가맹본부와 가맹점의 수익 비중을 최대 6대4로 제한하고 있다. 반대로 가맹점주의 투자비중이 높은 경우에는 가맹점주의 수익비중을 8까지 높이기도 한다. 본부의 몫은 6이 최대치지만 점주의 몫에는 상한선이 없다.
지난해 창업시장은 얼어붙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가맹점을 새로 열겠다는 이들이 줄면서 ‘창업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시기에 편의점이 가맹점을 크게 확대한 배경은 뭘까. 최소 비용으로 오픈이 가능한 가맹 모델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적은 비용을 들여 문을 연 점포는 본사 투자비중이 높아 가맹점주의 수익률은 낮아지게 마련이다. 반대로 투자를 확대한 본부 매출은 커질 수밖에 없다. 투자금이 늘면서 영업이익이 줄어든 가맹본부도 있다.
‘빅4편의점 가맹본부 매출액 및 가맹점 매출액 현황’이라는 통계에서 간과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가맹점의 투자비중 현황 분석 없이 단순히 오픈 점포수, 본부와 가맹점의 매출 증가율만 비교하면서 본부가 갑질을 했다고 오인하도록 한 것이다.
국감의 시작 시점에 나온 편의점 갑질 지적을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매장 오픈 비용이 부족한 창업자들을 지원한 것이 갑질로 둔갑한 사실에 편의점 본사는 적잖이 억울할 것이다. 국감의 '갑질' 흥행요소로 인해 또다른 기업들이 오해와 편견에 휘말리지 않을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