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H 청년건축가 주도형 공간복지’ 프로젝트는 주거지로는 열악한 반지하 공간을 리모델링해 마을 공간복지 시설로 바꾸는 참신한 사업을 진행했다. SH공사가 매입한 서울 여섯 개의 노후주택 반지하 공간에 청년 건축가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수리해서 주민 편의시설, 커뮤니티 다이닝 공간, 마을 자료실, 전시장 등의 우리 마을의 공간복지 시설로 탈바꿈해낸 것이다. 버려진 공간을 활용해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 공간을 창출하는 동시에 청년 일자리와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한 창의적인 사례다.
지난 9월에는 주민들의 반대로 우여곡절 끝에 지어진 가양동의 한 특수학교가 서울시 건축대상을 받은 일도 있었다. 2017년 당시 장애 학생의 엄마들이 주민토론회장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어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의 바로 그 특수학교다. 교육청 프로젝트라는 한정조건 속에서 적은 예산으로 지어진 특수학교 건축물에는 발달장애 아이들이 가진 특성과 교육을 연계하는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한 세심한 정성이 곳곳에 배어있다. 공간지각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헤매더라도 한 층에서 맴돌도록 ㅁ자로 지은 건물, 불안증세가 있는 학생들이 언제든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넓게 지어진 복도와 안정실,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고려해 높낮이를 다양하게 설정한 중정의 의자들, 휠체어 타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놓은 화분. 무릎 꿇은 엄마들의 간절함 위에, 자유롭고 창의적이면서도 배려의 디테일이 넘치는 건축물이 세워진 것이다. 공간을 이용하게 될 이들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필요를 채워 돕고자 한 공간 복지의 실현이다.
낙인 찍힌 혐오시설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을 만들기를 추구하는 반전의 마을도 있다. 경북 청송군 사람들이다. 청송군에는 2010년부터 이미 네 개의 교도소가 들어와 있다. 그런데 여기에 여자 교도소를 하나 더 유치하기 위해 ‘청송 교정시설 유치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지역 사람들이 힘을 합쳐 노력하는 중이다. 인구소멸을 막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전략으로 마을을 종합교정타운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교도관들을 위한 생활시설이 활성화되고, 교도소 면회객이 오가며 청송의 특산품인 사과나 고추 등을 사가면서 소비가 진작되며, 교정시설 관련 종사자를 위한 일자리도 만들어진 지난 십여 년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우리 동네엔 혐오시설을 둘 수 없다는 님비(NIMBY)의 통념을 뒤엎고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로 바꾼 사례다.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 마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만들어 나감으로써 변화가 더욱 빛난다. 2018년 발간된 간다 세이지의 ‘마을의 진화’는 일본의 산골 마을 가미야마의 지역재생 성공담을 자세히 들려 준다. 비영리법인 그린밸리를 주축으로 마을 주민들이 일궈 가는 마을의 진화 이야기다. 쾌적한 자연환경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원격 근무를 통해 창조적인 일을 하고자 하는 정보기술(IT) 회사의 위성 사무실을 하나씩 유치하면서 이 작은 마을은 최첨단 지역으로 거듭나게 된다. 직원들은 산속 시냇가에 발을 담그고 컴퓨터로 일을 하고, 동네 초등학교에서 인터넷을 사용한 특별 수업도 진행한다. 따뜻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가미야마에 이주해 온 IT 기업, 웹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 요리사, 수제구두 장인들은 이 작은 마을에서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움직인다. 마을의 유일한 고등학교였던 농업고등학교에서 지역의 미래 리더를 키우는 프로젝트도 그 중의 하나다. 주민들의 도움으로 이 마을의 산에 설치된 예술 작품 ‘숨겨진 도서관’은 주민들이 일생 동안 세 번, 졸업-결혼-퇴직의 전환기에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면서 기억을 공유하고 추억하는 장소가 됐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이 마을 사람들의 말이다.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될지 설렙니다’.
복지와 지역 공헌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의 공간에 기왕이면 누구나 문턱 없이 누릴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구현해 내는 일,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일, 내가 하는 일에서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기울여 보람을 얻어 가는 일. 우리가 몸담은 마을과 직장 곳곳에서 ‘설레는 프로젝트’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공간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들과 신선한 협업을 통해 설레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행복한 시민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