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와 디디추싱, 앤트그룹과의 관계 집중 조사
WSJ “중국 경제 전면 통제하려는 공산당 목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국 국영은행과 금융사들이 사기업과 어떤 관계를 맺고 거래했는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 빅테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데 이어 또다시 산업 규제 조짐을 보인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시 주석이 자본주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달 국영은행과 투자펀드, 감독 당국 등이 사기업과 지나치게 긴밀해진 건 아닌지 검토하기로 했다. 조사에 대한 세부 사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최근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을 비롯해 디디추싱, 앤트그룹 등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당국은 현재 25개 국영은행과 기타 금융기관을 조사하고 있다. 이들의 대출과 투자 기록을 검토하고 사기업과의 특정 거래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부적절한 거래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되면 공산당 차원에서 공식 조사하게 되며, 필요하면 경영진 기소와 임금 삭감도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에선 그간 금융권 보수가 다른 산업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 중국 최고 사정 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조사를 주도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시 주석이 10년 전 집권한 이후 줄곧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던 금융 분야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규모의 조사이며 이는 시 주석의 내년 3연임을 앞두고 중국 경제체제를 서구식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움직임이라고 WSJ는 풀이했다.
이와 함께 최근 헝다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금융권의 지나친 의존을 낮추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 헝다에 대한 국영은행의 대출 기록도 검토 사안으로 포함됐고, 주요 금융사 중 하나인 시틱그룹도 조사를 받고 있다. 시틱그룹은 지난 몇 년에 걸쳐 헝다에 100억 달러(약 12조 원) 이상의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농업은행과 에버브라이트그룹 산하 은행도 헝다 대출 건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다.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를 포함한 국영 펀드와 대형 은행, 보험사가 운영하는 펀드도 현재 단속 중인 민간 IT 대기업에 어떻게 투자하게 됐는지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한 소식통은 “해당 투자들이 국가의 이익이 됐는지 아니면 소수 개인의 이익이 됐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의 조사에 많은 시중 은행들은 민간 개발업체나 기업에 대한 대출을 철회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페티스 베이징대 경제학 교수는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던 일을 멈추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대출이 없으면 성장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우려도 다시 커지고 있다. 이달 들어 중국 전력난 우려에 출렁였던 시장은 최근 당국의 석탄 생산과 수입 확대 결정에 전날 진정된 분위기였지만, 금융권 규제 소식에 다시 불안에 떨고 있다.
WSJ는 “중국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경제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공산당의 조사 목적이라고 말한다”며 “그러나 불확실한 규제 환경에 처한 빅테크 기업부터 대출이 끊긴 부동산 개발업체까지 민간 부문의 경제 활동 둔화는 중국 정부에 딜레마를 안겨준다”고 꼬집었다.
한편 중국 부동산 시장은 최근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영매체 환구시보에 따르면 1일부터 7일까지 국경절 연휴 기간 신축 분양 주택 거래면적은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했다.